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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한림대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음식이야기 ①주는 대로 드세요

관련이슈 심훈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입력 : 2010-07-28 17:53:00 수정 : 2014-06-09 19: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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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음식이 짜다면 "다나카씨는 그냥 먹거나 말없이 나옵니다"
세계 3대 요리로 ‘구루메 왕국’ 자부심 높지만
日食은 주방장이 주는 음식 공손히 받아먹는것
필자: 센세! 라멘야데 시루가 좃토 시오카라이 도키와 난토 이이마스카?(선생님, 라면집에서 국물이 좀 짤 때는 뭐라고 말합니까)

일본어 선생: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더니) 나니모 이이마셍. 소노 마마 라멘오 스베테 다베타리 노코시타리 시테 데마스.(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다 먹거나 남기고 나옵니다)

줄서서 먹거나 도쿄 신주쿠(新宿)의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역 부근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어느 라면집 앞. 점심 때 길을 걷다 보면 이처럼 사람들이 음식점 앞에 늘어서 있는 광경을 종종 만나게 되는 곳이 일본이다.
동네 음식점에서 주문한 라면 국물이 상당히 짰지만 일본어가 짧았기에 뭐라 할 수 없었던 필자. 결국, 일본어 수업 시간에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가며 선생님께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이어 “하지만,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습니다. 그 집 음식이 내 입맛에 맞지 않으니까요”라며 덧붙여 주었다. 당연히 “국물이 좀 짠데요”라든가 “국물을 좀 싱겁게 만들어 주시겠어요?”라는 일본식 표현을 기대했던 필자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집을 택한 자신의 잘못이라니. 그렇다면 손님은 왕이 아닌가?’ 하지만, 스스로에게 불만을 묻는 과정에서 불현듯 깨달은 것이 있었다. 맛은 있지만 무엇인가 항상 2% 부족한 것 같은 일본 음식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주방장으로부터 음식을 공손히 받아먹기만 할 뿐, 자신이 요구한 대로, 또는 자신이 의도한 대로 먹을 수 없는 음식, 바로 일식이었다. 이후 계속된 대화를 통해 필자의 일본어 선생님은 “그래서 자기의 입맛에 맞는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도 일본인들이요, 그 음식점 앞에 줄을 서는 것도 일본인들”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 오기 몇 해 전, 필자가 한국에서 사귄 일본인 친구 역시, “‘음식이 맛없다’는 것을 일본어로 뭐라 하느냐?”는 질문에 “(내) 입에 맞지 않네요”라는 답을 들려준 적이 있다. 당시에는 ‘맛없다’는 표현을 익히려는 심산이었기에, ‘일본인들은 정말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대답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먹거나 음식 천국 일본에서는 개개인을 위한 음식 포장이 매우 발달해 있다. 이에 따라 동네 슈퍼 등에서는 일인용 덮밥에서 카레라이스, 우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먹을거리가 구비돼 있다.
몇 차례에 걸쳐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일본인들에 대해 얘기했지만, 오늘은 그 연장선상에서 일본인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음식 이야기로 주제를 이어가고자 한다. 인간의 생활양식을 결정짓는 의식주 중에서도 한가운데에 자리할 만큼 중요한 까닭에서다.

정치력과 경제력, 군사력을 기준으로 볼 때 G7이 세계 정세를 좌지우지한다지만 음식만 놓고 보면 중국, 프랑스와 함께 G3국을 형성하는 국가가 일본이다. 실제로 일본은 초밥과 생선회의 천국인 동시에 라면과 우동, 어묵과 튀김으로 풍성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구루메’ 왕국이다. ‘구루메’란 프랑스 어원인 Gourmet의 일본식 발음으로 ‘미식가’ 또는 ‘식도락’을 일컫는 단어. 해서, 이탈리아보다 더 맛있는 스파게티를 선보이고, 프랑스보다 더 부드러운 프렌치 케이크를 만들고, 인도보다 더 많은 카레를 내오는 나라 또한 일본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일본 요리가 맛과 함께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 있어서도 최고를 추구한다는 것. “일본 음식은 입으로 먹지 않고 눈으로 먹는다”라는 말은 그래서 더더욱 의미심장하게 와닿는다. 

칵테일바 같은 식당 일본의 대표적인 덮밥 전문점인 마쓰야(松屋)의 내부. 일본 음식점들의 구조는 대부분 유사하다. 술집의 칵테일 바처럼 길게 형성된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고 주방장은 그 앞에서 음식을 만들어 바로 제공하는 구조다. 결국, 손님은 주방을 보면서 음식을 먹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한 사실은 미각과 더불어 시각적인 면에서도 완벽을 추구하는 일본 음식의 강점이 기실은 가장 큰 약점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 음식은 마치 특A급 미술관의 잘 꾸며진 전시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들에게 최고의 전시회를 선보일망정 시민들의 접근을 불허하며 소통을 지양(止揚)하는 까닭에 모두가 스스럼없이 다가설 수 있는 생활 속의 미술과는 거리가 있다는 관점에서다.

실제로, 일본 음식점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구비돼 손님을 맞이하는 게 지극히 일반적이다. 자판기에서 음식을 골라 해당 티켓을 산 후, 주방에 건네기만 하면 원하는 음식을 수월하게 넘겨받을 수 있다. 물론, 말 한마디 없이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자신의 테이블 앞엔 젓가락에서부터 물, 냅킨, 양념 등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으니, 음식이 나오면 그저 고개 숙여 먹기만 하면 된다. 만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식점이라면 다행이지만,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조용히 자리를 뜰 테고.

그러고 보면, 일본 음식점은 많은 경우 술집의 칵테일 바처럼 만들어져 있어 요리사들은 안쪽에서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은 바의 바깥쪽에 나란히 앉도록 설계돼 있다. 물론, 이 같은 구조는 결코 식사를 어울려서 하지 않고 혼자서만 해결하는 일본인 특유의 개인적인 습성도 고려한 것으로, 4인용 사각형 탁자가 촘촘히 설치돼 있는 한국 음식점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에 주방장이 자신의 주변에 둘러앉아 있는 손님들에게 음식을 건네주는 광경은 마치 양계장 주인이 닭들에게 모이를 주는 형국이나 다름없다. 물론, 손님은 모두 주방을 향해 고개 숙인 채 말없이 밥그릇을 비울 뿐이고.

가뜩이나 수동적인 일본 음식을 더욱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앞에 차려진 기본 양념과 물을 제외하면 밥 한 공기, 단무지 한 그릇을 추가하려 해도 일정액의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한국에서처럼 국물을 덜 짜게 해 달라거나 면발을 꼬들꼬들하게 해 달라는 따위의 개성적인 주문은 일본 열도에서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물론, 라면발의 굵기를 선택하도록 묻는 음식점도 가끔 가다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러한 음식점도 매우 드문 것이 사실이고 보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점을 찾아 구루메 여행을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연히 이해된다.

그래서일까? 바로 눈앞에서 스스로 굽고, 볶고, 비비고, 말아 먹는 한국 음식은 뭐든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재이다. 고기를 굽더라도 자기의 입맛에 맞게 굽는 것은 물론 마늘과 김치, 버섯을 놓고 자기 취향대로 먹다가 종국에서는 밥까지 볶아서 먹어치우는 한국 음식은 그런 의미에서 일본 음식과 차원이 다른 퓨전음식인 셈이다. 먹는 이가 자신의 취향을 주방에 전달하거나 손으로 직접 비비고 굽고 말아 먹는 DIY의 결정판인 까닭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여럿이 어울려 즐겁게 대화하는 가운데 자신의 입맛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한국 음식이 일본 음식보다 딱 2%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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