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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교육 이야기 ① ‘교육이라는 이름의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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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27 21:56:50 수정 : 2010-10-27 21: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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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공직사회 문호개방, 한국보다 무려 5세기나 늦게 시행
중니(仲尼)는 실패한 정치인이었다. 기원전 498년, 큰 꿈을 펼치고자 안정된 공직을 박차고 고국을 떠나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한 것이 53세 때의 일.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긴 고령(高齡)으로 천지를 돌아다니며 도덕 정치를 설파했건만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올라야만 했다. 무려 13여년간의 결실 없는 무적(無籍) 생활.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은 오늘날 관광 상품으로까지 개발돼 그 진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사진은 머리에 탕건을 쓰고 ‘옥산서원(玉山書院)’이라는 시제로 4행시를 짓고 있는 초등학교 어린이들. 조선 정조 때 경주 옥산서원에서 과거 시험(지방시)을 치렀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경주시에서 마련한 과거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하지만, 정치판에 대한 절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인(仁)과 예(禮)를 내세우는 그의 명성은 높아지기만 해, 그를 따르는 제자는 3000명을 넘어서기에 이른다. 당시의 수많은 절대 권력자들 가운데 지금껏 자신의 이름을 남긴 이는 아무도 없지만, 중니는 훗날 동방의 성인으로 추대되며 자신의 성씨인 공(孔) 뒤에 자(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부여받는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1100여년이 지난 7세기 말. 남북조의 극심한 혼란을 딛고 마침내 수(隋)나라가 천하의 주인으로 등극하게 된다. 수나라는 사마의가 건국한 서진(西晉) 이후, 중국 대륙에 300년 만에 등장한 통일 왕조. 그런 통일 왕조의 초대 군주 수문제(隋文帝)는 세계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혁명적인 관료 선발제를 실시한다.

오늘날의 우리에겐 국가고시로 더욱 잘 알려진 과거제(科擧制)가 그것이다. 혈연(血緣)과 지연(地緣)을 배제한 채, 능력 위주로 공무원을 발탁하는 획기적인 발상은 이후 요동을 거쳐 한반도에까지 전파돼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다.

공자의 유학을 국시(國是)이자 국풍(國風)으로 삼은 조선이 과거시험에서도 유교 경전들을 핵심 교과목으로 선정한 것이다.

사실, 유학과 과거 제도는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충(忠)과 효(孝)를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유교 사회에서 과거 급제를 통한 공직 진출은 국가에 충성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부모에게도 가장 큰 효를 행할 수 있는 수단이자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유교 국가인 중국과 한국, 베트남에서만 과거 제도를 실시한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도덕국가 조선은 그렇게 유학의, 유학에 의한, 유학을 위한 삼위일체를 완벽하게 구현하며 유럽과 아랍에서도 그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제정 일치의 이상 사회를 구현해 나간다.

◇과거에 급제하면 3일간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삼현육각(三絃六角)으로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는 게 조선시대 풍습이었다. 오늘날 명문대에 진학하고 고시에 합격하면 마을 앞에 현수막을 걸어 놓고 꽹과리와 징을 울려 대는 격이라고나 할까.
엄밀히 말해, 과거 제도는 사람 많고 땅 좁은 동아시아에서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상의 관료 선발 방식이었다. 상인과 천민을 제외하곤 누구에게나 공평한 응시와 선발 기회를 준 까닭에 결과적으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유도하는 공리주의적 발상마저 내포한 까닭에서다. 기존의 관료 선발 시스템이 지배 계층의 기득권을 용인해 권력의 세습을 허용했다면, 조선에서 꽃을 피운 과거 제도는 공직의 대물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며 응시자들에게 평등한 출세 자격을 부여하는 ‘기회 균등의 법칙’을 제공해 주었다.

조선 왕조는 그렇게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을 통해 양민의 경우,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음을 못박으며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응시 기회를 보장 짓는다. 500년 동안 한반도 백성들의 교육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과거제는 이후, 일본의 식민 통치 속에 이 땅의 신분질서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세계 최고의 ‘묻지마 교육’을 탄생시키는 디딤돌 역할을 한다. 공평하다 하지만 과거 응시와 과거 급제에 있어 암암리에 유·불리를 규정 지웠던 계급 구조가 완전히 붕괴함으로써 많이 배운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진정한 교육 평등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었다. 면 서기가 된 소작농 아들이 못 배웠기에 가지지 못했던 아버지의 한을 풀며 사회의 지배 계층으로 당당히 진입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후 ‘교육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신분 상승과 성공을 향한 무한 궤도에 들어서며 온 나라를 광란의 질주 속으로 몰아 넣는다.

조선에서 과거제가 시행될 당시, 유럽은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있던 이탈리아를 필두로 이제 막 암흑의 시대에서 벗어나려던 상태.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정글과도 같던 전국시대가 서서히 정리되며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기 시작한다. 

◇1951년 개봉돼 비평가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영화 포스터. 영화에서는 몰락해 가는 명문가 출신의 블랑시(비비안 리)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욕망에 취해 살지만,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성공’이라는 욕망에 취해 ‘교육’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몸을 싣는다.
결국 천하를 손아귀에 넣은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막번(幕藩) 체제를 기반으로 지방 영주들의 자치권을 인정하며 봉건제를 더욱 굳건히 다진다. 그런 와중에서 수도는 물론 지방에서조차 권력의 대물림이 자연스러운 생존 법칙으로 이해되며 한반도에서의 과거 제도는 한낱 유토피아적 발상으로 치부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 열도에서 공직에 대한 문호가 개방된 것은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져 내린 19세기 후반, 메이지 정권 아래에서 실시된 고등 문관 시험에서부터다. 조선에서 태조 2년인 1393년, 첫 과거 시험이 실시된 후로부터 무려 5세기가 흐른 뒤의 일이었다. 춘향전의 이몽룡은 과거 급제로 신분 상승을 이루었다지만, 일본의 경우엔 근대까지 신분 상승을 위한 사다리 자체가 없었던 셈이다. 해서, 누구든 공부만 잘하면 출세할 수 있었던 한반도에서 “사람은 자고로 공부해야 한다”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도리였다면, 열도에선 “사람은 자고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게 더욱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루가 높으면 골이 깊고,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겨냥한 한반도의 공직 선발 시스템은 모든 이들에게 일확천금의 로또 같은 환상을 불어 넣으며 과거장과 고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무수히 양산시킨다.

이에 따라, 한평생 과거 공부에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공자왈 맹자왈을 읊조리는 외길 인생은 비효율을 낳고, 이러한 비효율은 결국 대리 시험, 커닝 같은 숱한 부정 행위를 야기시킨다.

실제로 조선 최고의 사상가였던 정약용은 과거 합격을 위해 10년 동안 문장 다듬기에만 골몰했던 젊은 시절을 후회했으며, 박지원은 난장판 같은 과거장에서 깔려 죽을 뻔한 이후 아예 과거 급제의 뜻을 접는다. 그러고 보니, 과거 시험장에서 커닝을 하다 들킨 형을 둔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 강세황은 노년까지 재야에 묻혀 세상의 이목을 피해야만 했다.

반면 ‘권력은 세습되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왔던 열도의 논리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총리는 물론, 중의원과 참의원마저도 없는 집안에서 나오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도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한국의 현실은 일본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럼 다음에는 이와 같은 양국 간 인식 차이가 어떠한 교육 환경으로 연결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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