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전문 블로그인 ‘제닉스의 사고뭉치’ 운영자 이일희씨가 서울 신림동의 한 찻집에서 그의 블로그 관리 비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
―해당 업체로부터 소송 안 당했나.
“불이익 같은 것은 없었다. 삼성에 다니는 지인들로부터는 연락을 좀 받았지만….”
―일종의 ‘음모론’인데.
“일이 그 정도로 커질 줄은 몰랐다. 한 어민이 ‘사고에 이상한 내용이나 문제점이 많은데 언론이 너무 편향적으로 보도한다. 우리 이야기를 안 해준다’고 하기에 인터뷰한 것이다.”
―어떻게 알게 됐나.
“방송사 PD인 지인이 태안 사고를 취재하다가 그 어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론사에 제보하지 않아도 다른 방법이 있다’면서 내 블로그를 소개해줬다고 하더라.”
―꼭 기자 같다. 더 파헤칠 작정인가.
“블로깅 자체가 미디어 기능이 있으니까…. 다만 그 건은 (파헤쳐도) 내용이 더 이상 나올 게 없다.”
이씨는 국내 ‘얼리어답터’ 1세대로 잘 알려져 있다. 얼리어답터란 새로 나온 제품을 먼저 사용해본 뒤 리뷰를 써 일반 소비자들에게 그 장단점을 낱낱이 알려주는 사람이다. 컴퓨터 주변기기,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 MP3 등이 이씨의 관심 분야다. 그가 블로그에 올리는 신제품 리뷰는 매번 엄청난 수의 독자를 불러모은다.
―아무래도 객관성이 중요할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신제품 리뷰 쓸 때 회사가 무료로 제품을 제공한다. 돈을 주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편향적으로 되기 쉽다. 하지만 그럴 경우 사용자들 사이에서 신뢰가 떨어지고 자연히 일감도 줄어든다. 내가 받아보는 제품 중에는 완성도가 너무 떨어지는 것도 있다. 그러면 그냥 다시 포장해서 돌려보낸다.”
―기업에서 ‘유혹’도 많이 받겠다.
“원고를 미리 보여 달라고 한 뒤 수정을 요청해온다. 한 유명 MP3 업체는 내가 리뷰를 쓰다가 단점을 지적하면 꼭 고쳐 달라고 한다. ‘좀 잘 써 달라’는 것도 아니고 숫제 콕 집어서 삭제를 요구한다. 그러면 제품을 돌려보내며 ‘그런 식의 리뷰는 못 쓰겠다’고 말한다.”
◇IT 전문 블로거 이일희씨가 운영하는 블로그 ‘제닉스의 사고뭉치’의 한 페이지. IT 관련 신제품 정보가 풍부하다. |
―그럼 불이익을 받지 않나.
“전혀 그렇지 않다. 리뷰 쓰는 사람보다 업체가 더 많다. 업체는 마케팅해야 하지만 블로거로선 꼭 여러 기업 제품을 다 다룰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업체와 일을 안 하면 된다. 물론 트렌드를 주도하는 회사라면 좀 문제가 된다. 그럴 경우 제품을 직접 사서 리뷰를 쓴다. 내 돈 내고 산 제품의 단점을 쓴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나.”
―삼성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삼성 제품 리뷰를 많이 쓴다. 그것은 모순 아닌가.
“모순이 아니다. 삼성이란 회사에 대해 비판적인 것과 별개의 문제다. 삼성이 저지른 일부 잘못을 사회적 시각에서 비판할 뿐이지 삼성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회사가 아니라 이슈, 사건, 제품에 대응한다.”
요즘 기업들 사이에서 ‘블로그 마케팅’이 유행이다. 직접 블로그를 만들어 홍보할 뿐만 아니라 몇몇 인기 블로그에 자사 제품 관련 정보가 실리게끔 하는 것도 블로그 마케팅의 범주에 든다. 이씨의 신제품 리뷰가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보니 그를 주목하는 업체가 많다.
―기업 보도자료 자주 받아보나.
“일주일에 수십개씩 온다. 신제품 출시나 각종 행사 등을 알리는 내용이다. 하지만 블로그에 곧바로 실을 수 있게끔 만들어서 주는 곳은 없다.”
―효과적인 블로그 마케팅 요령을 들려 달라.
“기업은 제품의 단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블로그에 단점이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장단점을 모두 객관적으로 부각시키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회사에 더 해롭다. 그리고 너무 틀을 잡아주면 안 된다. 블로거는 다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틀에 맞춰 자료를 보내놓고 ‘이렇게 써 달라’고 하기보다는 블로거들이 각자 개성을 살리도록 내버려두는 게 좋다.”
―업체들의 신제품 설명회에 가보면 어떤가.
“홍보나 마케팅 담당자들이 나와 보도자료에 다 있는 멘트를 되풀이하는 게 대부분이다. 홍보가 목적이어선 곤란하고 정말 진솔하게 제품의 단점이나 그간 몰랐던 내용을 소개해야 한다. 그럴려면 제품 제작자나 기획자가 직접 나와야 한다.”
‘취미’로 시작한 블로그가 이제 ‘사업’이 됐다. 얼리어답터로 명성을 누린 이씨는 2006년 ‘제닉스 스튜디오’란 회사를 설립했다. 삼성, 소니, 모토롤라 등의 제품들에 대한 한국어 리뷰를 5개 외국어(영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중국어)로 번역해 세계 40개국에 제공한다. 이와 연계된 다양한 온라인 마케팅도 벌이는데, 매출 규모가 연간 5억∼6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블로거로서 크게 성공한 셈인데.
“흔히 ‘블로거가 돈을 번다’고 하면 글을 쓰고 거기에 광고를 붙여 현금을 받는 것만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이는 거의 없다. 광고로는 돈을 벌 수 없다. 블로그 콘텐츠를 활용해 강연, 책 저술, 마케팅 등 다른 일과 접목해야 한다. 블로그 방문자들에게 광고 보여주기로는 안 되고, 생산된 콘텐츠를 활용해 돈을 벌어야 한다.”
―어엿한 CEO인데 블로그 자기소개란에는 직업을 ‘탐정’이라고 적었다.
“일종의 유머다. 서평이나 칼럼 기고, 사진 촬영 등 의뢰 들어오는 일은 다 한다는 뜻에서 그렇게 붙여봤다. 가끔 진짜 탐정으로 오해하는 분도 있다. 한번은 ‘누가 1981년도 워드 프로세서로 된 차용증을 들고 갑자기 나타나 아버지가 예전에 진 빚이라며 돌려 달라고 한다. 진짜 81년도 것인지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때 쓰던 워드 프로세서는 지금과 글 자체가 다르다. 확인해보니 당시엔 없던 글꼴이었다. 해결해준 셈이지. 고맙다고 하더라.” (웃음)
―우리나라 블로그 문화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외국에서는 블로그가 처음부터 저널리즘의 수단이었다. 그런데 국내는 그렇지 않다. 네이버가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경쟁자 개념으로 블로그 시장을 키웠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에 블로그가 1400만개 있었다는데 대부분 개인 일기장이나 사진첩이다. 어느 연구자는 ‘1400만개나 되는데 마땅히 읽을 게 없다’고 하더라. 처음 소개될 때 좀 더 포괄적이고 객관적으로 소개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기획취재팀=김용출·김태훈·김보은·백소용 기자
kimgija@segye.com
◆프로필
▲1981년 10월11일 서울 출생
▲2001년 9월 한빛소프트 입사, 정보관리팀 근무(∼2003년 10월)
▲2003년 10월 블로그 ‘제닉스의 사고뭉치’ 개설
▲2006년 제닉스스튜디오 창업
▲2006, 2007년 연속으로 이글루스 ‘톱 100 블로거’ 선정
▲2008년 5월 월간 마이크로소프트 선정 ‘이달의 블로거’
◆이일희가 제안하는 좋은 블로거가 되기 위한 팁
1. 자신의 생활이나 취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
2.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3. 블로거들의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면 비슷한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4. RSS 리더를 적극 활용하면 좀더 많은 양의 콘텐츠를 소화할 수 있다.
5. 다양한 메타블로그 등록으로 블로그 글 노출 기회를 높여야 한다.
▲1981년 10월11일 서울 출생
▲2001년 9월 한빛소프트 입사, 정보관리팀 근무(∼2003년 10월)
▲2003년 10월 블로그 ‘제닉스의 사고뭉치’ 개설
▲2006년 제닉스스튜디오 창업
▲2006, 2007년 연속으로 이글루스 ‘톱 100 블로거’ 선정
▲2008년 5월 월간 마이크로소프트 선정 ‘이달의 블로거’
◆이일희가 제안하는 좋은 블로거가 되기 위한 팁
1. 자신의 생활이나 취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
2.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3. 블로거들의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면 비슷한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4. RSS 리더를 적극 활용하면 좀더 많은 양의 콘텐츠를 소화할 수 있다.
5. 다양한 메타블로그 등록으로 블로그 글 노출 기회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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