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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돌풍 중심에 선 책사들
◇‘홍국영 어록’이 인터넷에 떠돌 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산’의 홍국영, ‘태왕사신기’의 현고, ‘정조 8일’의 정약용(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왕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펼치는 대권 드라마는 대선 정국의 현실 정치보다 TV 사극 속에서 더 흥미진진하다. 9시뉴스나 대선 후보 토론회보다 월등히 높은 사극 시청률이 이를 보여준다. 최근 사극 돌풍의 중심에는 왕이 아니라 왕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눈부신 활약상이 있다. 킹보다 힘센 킹메이커들은 혀를 내두르는 지략으로 왕을 보필하며 시청자의 꽉 막힌 속을 뚫어준다. 지근거리에서 최고 권력자의 전략과 정책, 언행에 영향을 미치고 때론 비판자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인기야말로 ‘나홀로 영웅’보다 ‘포용력 있는 지도자’를 원하는 민심이 반영된 것 아닐까.

◆킹보다 힘센 킹메이커들=후발 주자로는 이례적으로 ‘왕과 나’(SBS)의 시청률을 뒤집고 월화드라마 최강자로 올라선 MBC 사극 ‘이산’ 성공의 일등공신은 홍국영(한상진)이다. 정적의 공세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한 정조(이서진)를 보호하는 책사로서 그의 기지는 다음 회를 기다리게 하는 중독성 강한 미끼다. 카리스마와 유머감각을 겸비한 그의 극중 대사는 ‘홍국영 어록’으로 정리돼 인터넷에 떠돈다.

“자고로 친구를 가까이 하되 적은 더 가까이 하란 말이 있지요.”

“자주 옮겨심는 나무는 잘 자라지 않습니다. 작정하고 터를 잡았으면 그 자리에 뿌릴 내려야지요.”

왕의 브레인으로서 홍국영이 정적 정후겸과 벌이는 지략대결은 서바이벌 게임 같은 현실에서 유용한 처세술이 된다. 이병훈 PD의 전작 ‘대장금’의 드라마 공식과 출연진이 반복돼 식상해 하던 시청자들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홍국영 때문에 ‘이산’이 살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드라마 제목을 ‘이산’이 아니라 ‘홍국영’이라고 바꿔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지난주 종영한 ‘태왕사신기’의 현고(오광록) 역시 ‘태왕사신기’의 활력소였다. 사신 중 우두머리로 담덕(배용준)을 왕의 길로 이끄는 촌장 ‘현고’는 허술한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왕이 될 자조차 자신의 능력을 회의할 때 그는 왕을 알아보는 혜안과 조언으로 왕을 이끈다. 오광록은 특유의 말투로 인기를 끌며 시청자들 사이에 ‘오광록 성대모사’ UCC(손수제작물) 제작 열풍을 몰고오기도 했다.

케이블 채널 CGV의 사극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의 정약용(박정철)도 킹메이커로서 극의 주요 축을 담당한다. 22세 때 정조에게 ‘중용’을 강의하며 발명가이자 건축가, 학자로서 왕의 측근이 된 정약용은 “조선의 운명을 손에 쥔 젊은 지략가”로 묘사된다. 화성 원행 때 정조 모살과 벽파의 쿠데타 계략에 맞서 벌이는 정약용의 치열한 두뇌싸움은 관전 포인트다.

◆킹메이커의 변모=사극 속에서 급부상하는 킹메이커의 존재감에 대해 전문가들은 드라마 속 왕권의 변화와 관련이 있음을 지적한다. ‘태왕사신기’의 광개토대왕, ‘이산’의 정조가 절대권력에서 벗어나 탈권위적인, 때로는 유약한 모습으로 그려진 데 주목해야 한다는 것. 끊임없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했던 어린 정조,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스스로 능력을 감춰야 했던 태왕의 모습은 기존 사극 속 군왕의 이미지와 다르다.

이에 대해 ‘태왕사신기’의 김종학 감독은 “지금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CEO로서의 왕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단순한 킹메이커로 수명을 다했던 예전 인물들과 달리 요즘 사극에서 킹메이커들은 자신의 야망과 목적을 간직한 채 전문가적 능력과 역할을 수행하는 주인공”이라며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지금 우리 국민이 특정 영웅의 절대능력보다 참모들과 함께 더불어 가는 리더의 모습에 주목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홍국영이 “소신에겐 반드시 힘을 얻겠다는 야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지요”라며 끊임없이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는 것, 현고가 거믈촌 촌장의 역할에 충실할 때 왕을 도울 수 있다는 설정은 사극 속 참모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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