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욕망, 종교·신념에 대한 회한…
우리네 사는 모습 송두리째 보여주고 싶어”
◇전준호 작가는 “좋은 작품보다 잘 팔리는 작품이 판을 치는게 한국미술계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
그는 재일동포 양영희 감독이 자기가족사를 소재로 만든 다큐 ‘나의 아버지의 조국’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다큐는 양 감독의 부친이 북송한 두 아들 내외를 만나는 내용이다. 두 아들의 어려운 삶의 현실과 아버지의 신념사의의 괴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이러니한 점까지 우리네 사는 모습을 송두리째 다 보여주는 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하이퍼리얼리즘입니다.”
그는 요즘 미술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는 수공이 강조된 하이퍼리얼리즘 회화는 개념이나 이념조차도 없는 공예품 같은, 형식적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말했다. 중국을 제외한 비교적 노동력이 싼 아시아권 작가들의 작품이 주를 이루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좋은 전시보다 잘 팔리는 마켓지향의 작품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한국미술계의 현실입니다.” 그는 감히 말한다. 전시의 긍극적인 목적이 되살아나야 한국미술이 살 수 있다고. 진정한 평론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그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오는 3월 9일까지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타이틀은 ‘하이퍼리얼리즘’이다. 오늘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가 그의 작품에서 돈을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시대의 대표적 아이콘을 담고 있는 것이 돈이지요. ” 그는 갖고 싶고 친숙한 돈의 이미지를 작품의 아이콘으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하이퍼리얼리즘-뉴욕타임스’.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온 이국 처녀들이 뉴욕타임스 일면을 장식한 모습을 담은 작업이다. |
그는 지난해 9월 뉴욕 첼시의 페리루벤스타인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졌다. 뉴욕타임스와 아트뉴스지에서 전시 리뷰가 실릴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이번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전시에서는 9점의 영상작품, 3점의 조각품, 1점의 회화작품이 출품됐다.
전시 대표작 ‘하이퍼리얼리즘’은 5개의 채널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각 채널 속에는 탈북자들, 자유의 여신상, 맥아더 장군, 김일성상, 북한돈(100원지폐) 등 5개의 매개체가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한다. 영상 속에서 탈북자로 보이는 여러 명의 사람들은 담을 넘으려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고, 맥아더 장군은 “I shall return.”이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바닥에 선명하게 놓여진 북한 100원짜리 지폐 속에는 피곤한 듯 외투를 벗어 어깨에 짊어진 한 남자가 지폐 속 그려진 초가집으로 들어가며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작품들은 현재 우리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는 탈북자나 북한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이며, 자유를 표방하는 미국의 만민 평등주의 개념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반문하고 있다. 작가는 사회주의의 헛됨과 미국의 영웅주의로 물들여진 현세에서 벗어나고 싶은 염원을 100원짜리 지폐 속 남자로 형상화하고 있다. “현실을 살고 있지만 표면적으로 느끼지 못하거나 간과할 수 있는 현실 속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제 작업의 모토입니다. 바로 제가 말하는 극사실주의 ‘하이퍼리얼리즘’이지요.” (041)620-7257
편완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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