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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학술계, 다중지성 출현… 보·혁대결 토론은 빈약

입력 : 2008-12-29 17:50:19 수정 : 2008-12-29 17: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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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성격규명 늦고 설득력 있는 언어로 풀어내지 못해
세계적 학술대회 잇달아 열려 '성과'… 후속조치는 미흡
◇2008년 학술 현장이 다룬 주제는 넓었고, 논란은 뜨거웠다. 촛불집회, 세계언어학자대회, 교과서 논란 사진(위로부터)은 올해 학술계를 여실히 비추는 거울들이다.
규모에 비해 깊이는 약했다. 외부적 충격에 따른 내부의 시각차가 드러났다. 전문가와 일반인을 연결하는 다중지성이 출현했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인문사회계로 대표되는 2008년도의 학술계를 요약할 만한 문장들이다. 올해처럼 이 땅에서 세계적 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한 적도 없었고, 집단적으로 지성이 표출된 적도 없었다. 이는 올해 학계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전히 치열한 내부 토론도 없었고, 학계가 이론이나 주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도 못했다. 어느 해에 비해서 복잡다기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2008년 학술 현장을 정리해 본다.

◆다중지성의 출현=올해 학계를 뒤흔든 것은 역시 ‘촛불집회’였다. 더 이상 계몽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한 대중을 바라보면서 당시 학계는 설득력있는 분석을 내놓지 못했다. 대중이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시하고도 반년이 지나서야 학술단체와 잡지들은 이들의 성격 규명에 나섰다. ‘문학과 사회’, ‘철학과 현실’, ‘창작과 비평’ 등 학술잡지들은 연말까지도 ‘촛불’이 내포하고 발산한 ‘다중지성’ 분석에 여념이 없었다. 여름에 일간지를 통해서 단편적이고 단발적으로 전달되던 분석에 비해 깊이가 더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중지성이 의미하는 바를 설득력 있는 언어로 풀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서 다중지성을 일컬어 “개방적 소통을 통해 공통점을 지니지만 결코 균일하지 않은 집단적 개인성이 있다”고 평했다.

◆세계적 학술대회, 미흡한 후속 조치=5년마다 열리는 세계언어학자대회, 5년마다 모이는 세계철학대회, 2년마다 열리는 세계여성철학자대회가 올여름 한꺼번에 열렸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 석학들이 한국을 찾았다. 언어학대회에 참석한 수전 로메인 옥스퍼드대 교수는 “영어와 같은 거대 언어들이 언어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며 언어다원주의를 고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에서 개최된 흔치 않은 대회를 통해 한국 지성계와 독자들은 철학과 언어의 문제를 총괄적으로 조망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세계적 석학의 강연은 학계에 ‘묵직한 자극’을 주었지만 의미 있는 후속 작업은 더딘 편이다. 석학들의 방문으로 개별 학회와 학계의 언론 노출도는 늘었지만, 이들의 방문을 생산적인 논쟁과 결실로 이어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이들 학회의 결산 평가회는 행사장을 찾은 인원과 언론 지면 노출 횟수를 통계로 제시했지만, 미래의 과제를 논하지는 못했다.

◆대정부 시각에 따른 보수―혁신의 빈약한 논쟁=10년 만에 탄생한 보수정권의 등장으로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이 지속됐다. 그러나 정부의 근·현대사 수정 논란에서 보듯 논쟁의 중심에는 학계보다는 정부와 정치권이 있었다. 이념형으로 제시된 뉴라이트의 일부가 정치조직으로 변질하면서 보수 학계 내부에서마저 비판 목소리가 거셌다. 진보진영은 정부가 학계의 자율성마저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국 60주년을 둘러싼 담론 투쟁도 지속됐다. 진보 학계는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의 시점으로 봤지만, 보수 진영은 1948년 정부 수립일을 기점으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 학계는 건국 이후 이뤄낸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성과를 반영하려면 1948년 건국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진보 학계는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의 출발점으로 보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의 항일투쟁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일본 문부성이 중학교 사회교과서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알려져 학계의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했다. 정부는 동북아역사재단 산하에 독도연구소를 설립하며 국민적 분노를 수용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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