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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말 성경엔 없어"

입력 : 2009-07-07 16:59:00 수정 : 2015-09-06 17: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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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사제수녀 대한성공회 오인숙 카타리나 신부에게 듣는 여성 사제의 길
◇1964년 서강대 영문과를 1회로 졸업하며 수녀가 되겠다고 하자 “지금이 중세기니?”라며 뜯어말리던 친구들에게 “물질만능주의 시대가 중세보다 더한 지금 종교가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오인숙 카타리나 사제수녀는 “다시 태어나면 또 기쁘게 수녀가 될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송원영 기자
지난 5월 대한성공회 이양란 엘리사벳(51) 수녀가 사제 서품을 받음으로써 우리나라는 2007년 수녀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사제가 된 오인숙 카타리나(69) 수녀와 함께 복수의 사제수녀를 보유하게 됐다. 남성 일색의 보수적인 기독교계 성직 전통에서 여성이 사제의 길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가부장제가 뿌리깊은 한국적 풍토에서 수녀의 사제직 진출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성공회 종주국인 영국에서 수도회 갱신운동을 하다 암이 발견돼 수술 뒤 속리산에서 요양 중 잠시 상경한 오인숙 사제수녀를 7일 서울 정동 성가수녀회에서 만났다. 건강을 걱정하자 “발견되고 치료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아픈 ‘덕분’에 김 기자도 만나게 되지 않았냐”고 말하는 그의 해맑은 미소는 밝고 기운이 넘쳤다.

#사제수녀 되기까지 30년 걸렸다

이양란 수녀가 사제 서품을 받던 날 “교회 시스템이 사회에 따라 변해야지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는 오인숙 사제수녀는 “여성 사제를 이제까지 배출하지 못한 게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억압을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여자이기 때문에 사제가 될 수 없고 보조자로만 여긴다는 건 성서에도 위배됩니다. 하느님은 아담과 이브를 동등하게 만드셨습니다. 성경에 여성이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없습니다. 빈 무덤을 찾아와 부활의 첫 대면을 하고 메시지를 받은 것도 여성인 막달라 마리아이고, 예수를 돕는 제자 역할에 여성이 더 많았다는 게 성경에 나옵니다. 12제자를 남자만 뽑았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유대인만 될 수 있다는 것과 같아요.”

남성 사제 일색인 가톨릭과 달리 성공회에서는 여성 사제를 인정하고 있다. 1974년 미국에서 첫 여성 사제가 탄생한 이후 88년엔 흑인 여성 주교까지 나왔다. 94년 영국성공회에서는 1500명의 여성 사제가 대거 배출됐다. 지금 영국성공회 성직자의 5분의 1은 여성 사제이며 캐나다엔 여성신학자 수가 남성을 추월했다.

미국에서 여성 사제가 탄생한 70년대에 성공회대에서 ‘교양영어’를 가르치던 오인숙 수녀 역시 첫 여성 사제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서 첫 사제수녀가 되기까진 그후에도 30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국내에선 수녀들조차 사제수녀가 미사 집전하면 참석 안 하겠다는 시절이었어요. 외국에서도 사제수녀가 미사집전을 하지 못하도록 성당 문을 잠가놓는 해프닝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에겐 시기상조라고 생각해 수도자의 신분, 수도원의 울타리를 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요.”

오 수녀는 대신 여성성직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 여자 제자들이 사제가 될 수 있는 길을 텄다. 2001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사제 서품을 받은 이후 신학을 전공한 여성 9명이 사제가 됐다. 마침내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던 수도회의 요청으로 오 수녀는 2007년 4월 67세에 한국인 수녀로서 첫 사제가 됐다. 세계에서도 수녀 생활을 하다 사제수녀가 된 예는 15명 안팎에 불과하다. 그중에 두 명이 한국인인 셈이다.

#“암조차 내겐 고통의 경험입니다.”

사제수녀가 되면 뭐가 달라질까. 여성이 아무리 많아도 신부 한 사람이 없으면 집전할 수 없던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된다. 오 사제수녀는 수도회가 운영하는 청주의 정신지체장애인시설과 강화의 노인복지요양시설 등에서 감사성찬례(미사)를 집전하고 장례·영세를 베풀었다.

사람들은 “사제님의 설교를 듣고 눈물이 났다. 이제야 사제가 된 건 너무 아까운 일”이라고 했다. 소감을 묻자 “예전에 피동적으로 미사에 참석할 때와는 달리 집전과 설교를 맡으니 내가 예수님의 몸으로 헌신해야 된다는 소명의식이 더 선명해지고 하늘의 모든 천사 성도들과 함께한다는 게 실감났다”고 했다.

영문서 번역과 성공회주교회의 등의 통역 전문가로 활약해온 오 사제수녀는 보통 작업을 하느라 새벽 2시 전에 잠든 적이 거의 없다. 암 수술을 받으면서도 “언제나 잠 좀 실컷 자는 게 소원이었는데 덕분에 실컷 잘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암 선고를 받고 든 첫 생각도 그저 ‘암이 내게도 왔구나!’였다. 그는 “병을 통해 고통 체험과 위로의 힘을 깨닫는 등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수술실에서 진땀을 흘리는 의사를 보면서도 “내가 의사들한테 ‘공헌’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그다. 하지만 오 사제수녀를 기다리는 곳은 따로 있었다.

그는 한국에 성가수도회를 세운 영국 수도회에 건너가 수도회 갱신운동을 일으키던 중이었다. 성공회 종주국인 영국은 현재 젊은 수도자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위기에 처한 상황. 그가 지난해 윔블던에 마련한 수도공동체는 어느덧 동네의 유명 영성센터로 자리 잡았다. 학교, 교회, 길을 망라하고 ‘찾아가는 선교’를 통해 사람들의 영성 성장을 돕고, 내년엔 ‘피정의 집’도 새로 낼 계획이다.

영국의 한 신부는 한인 신도들을 위한 미사 집전을 오 사제수녀에게 요청해놓은 상태다. 그는 “영국수도회가 1925년 한국에 수도원을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따뜻한 손길을 펼쳤는지 잘 안다”면서 “이제 우리가 영국에 선교를 되돌려 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한다.

열 살 때인 6·25전쟁 중 교사였던 부모를 동시에 잃고 영국 수녀들이 세운 수원의 성베드로보육원에서 자라며 큰 사랑을 배웠다는 오인숙 사제수녀의 삶은 성별과 국경,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한마디를 더 남겼다. “예수님께 받은 큰 사랑을 세상에 온전히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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