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제 코드/조용래 지음/논형/1만6000원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노나카 이쿠지로 지음/박철현 옮김/주영사/1만5000원
경성 리포트/최병택·예지숙 지음/시공사/1만2000원
지구촌을 온통 불바다로 몰아넣었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4주년을 맞아 전범국이자 패전국 중의 한 나라인 일본을 다룬 연구서가 줄줄이 나와 이목을 모으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2차대전 최대 피해국으로서 아직도 그때의 상처와 앙금이 지워지지 않아 느낌이 남다르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은 전후 처리를 깔끔하게 마무리해 주변국들과 조화롭게 관계를 재정립했지만, 일본은 전범인 히로히토 천황의 전쟁 책임을 교묘하게 피해갔고, 되레 천황을 평화의 화신으로 포장하면서 군비증강에 몰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게 됐다.
‘패배를 껴안고―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과 일본인’은 천황제로 대표되는 일본 사회와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총사령부(GHQ)의 역학관계를 통해 전후 일본의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파헤친 역작이다.
책에 의하면 더글러스 맥아더 미군 최고사령관은 패전에 대한 허탈감과 냉소적 분위기가 퍼진 일본을 재건하면서 ‘군국주의 일소와 민주화’를 목표로 내걸었으나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천황제를 유지시켰다. 천황의 전쟁 책임 면책은 결과적으로 천황 이하 모든 일본인들의 죄의식을 무뎌지게 했고, 최대 피해자인 아시아인들의 존 재는 완전히 무시됐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과 주변 피해국들이 전쟁 책임과 전후 보상 문제로 갈등을 빚는 건 그때 잘못 뿌려진 씨앗 때문이다.
미군정의 일본 점령기간은 ‘일본과 미국의 교배형’ 통치 모델이 자리 잡은 시기라고 규정하는 저자는 이런 체제하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장하기는커녕 오히려 관료주의만 강화됐다고 본다. 일본의 전후 기간을 패전 이후부터 히로히토가 세상을 떠난 1989년까지 잡는 저자는 패전 이후 일본에서는 경제성장을 이루려면 국가 최상층에 의한 계획과 보호가 필수라는 사고가 자리 잡았고, 일본은 결 국 경제 강대국으로 성장했으나 1989년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과 함께 경제 거품이 일시에 꺼졌다고 분석한다.
‘천황제 코드’도 전후 미국 점령군의 실용주의가 일본 지배층의 형식주의와 만나 천황제 유지와 평화헌법 탄생이라는 기이한 결과를 낳았다고 풀이한다. 책은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가 천황이라는 ‘혹’을 달아맨 기묘한 모습을 취했고, 일본 사회의 여러 모순을 잉태하는 근거가 됐다고 지적한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를 비롯해 계속되는 우경화, 역사 왜곡, 재일교포와 오키나와 주민들·부라쿠민·아이누족에 대한 차별 등 일본 근현대사의 정체를 살펴보려면 천황제라는 암호를 풀어야 한다고 전제한 저자는 천황제 유지가 현재까지 일본 사회를 왜곡하고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태평양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은 태평양전쟁 중에 치러졌던 6개의 전투를 심도 있게 분석해 일본 패배의 원인을 일본군 조직에서 찾는다. 1905년 일본군은 초강대국이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총검을 앞세운 무모한 돌격전과 함대결전에서 거대한 함포로 승리를 거둔다. 일본군은 태평양전쟁에서도 이 방법을 쓰려고 했지만, 과거의 성공에 얽매인 나머지 자기혁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과거 일본군 패배의 원인을 물량 부족 때문이라고 본 분석을 뒤집는 주장이다.
◇1945년 8월15일 라디오 방송에서 히로히토 천황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견디기 어려움을 견뎌라”라고 얘기하자, 그의 신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1945년 9월2일 미국 해군 USS 미주리호에서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식이 열리고 있다. 당시 미주리호 선상의 일본 대표단은 승리한 연합군과 무기에 완전히 포위당한 채 말 그대로 압도당했다. |
일각에서는 “철도, 병원 등의 근대적 시설이 건설되고 근대적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한국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시기”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보편적 인식 속에는 ‘부끄러운’ 그래서 기억하기 ‘불편한’ 역사로 남아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책은 여전히 유효한 관념인 ‘부끄럽고 기억하기 불편한 역사’로 남아 있는 이 시기를,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과 관념, 욕망 등을 통해 이야기한다. 식민지 시대를 전공한 두 저자는 비록 ‘1920년대와 30년대’라는 시간과 ‘식민 도시 경성’이라는 공간으로 한정했지만 ▲샐러리맨의 일상·높은 교육열과 좋은 집에 대한 열망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소비와 다양한 유행의 형태 ▲소외받고 가난한 자들의 모습 등을 통해 ‘1920년대와 30년대 경성의 일상’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관습, 문화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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