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와중에도 창업 100년이 넘은 회사가 2만1066개나 되고, 창업 1000년이 넘은 회사도 8개나 되는 나라가 있다. 이들 중에는 창사 이래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고 구조조정에 성공한 기업들이 즐비하다. 경영 위기에 처하면 회사는 종업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오히려 믿음과 희망을 주고 기술 혁신, 아이디어 쇄신을 통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한다.
바로 이웃 일본 이야기다. 숱한 침략과 역사 왜곡, 독도 영유권 침탈 등으로 우리나라와는 앙숙이지만, 얄밉도록 장점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노포(老鋪·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대물림 가게들이 많다.
또한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 오히려 매출이 성장하는 강소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내로라하는 대기업, 재벌 그룹들도 많다. 오늘날의 일본을 만든 힘은 여기에 있다. 다양한 규모, 다양한 층위의 경제인들의 천국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10년 불황을 거치면서도 흔들림 없이 경제대국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현재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오히려 건재함을 과시하며 성장하고 있다.
방송작가 출신으로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 강사인 홍하상 중앙대 초빙교수가 20여 년간 일본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집필한 ‘일본의 상도-고객이 보고 있다’(창해)는 오늘날의 일본이 있게 한 구체적인 일본의 상도와 일본 상인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참고문헌만으로 구성한 학술 책이 아니라 일본 상인 수백 명을 직접 만나 취재하고, 집필에만 7년이 걸린 ‘일본 상도’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책은 오사카·교토·오미·나고야·도쿄 상인 등 일본의 대표적인 5대 상인을 소개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에 걸쳐 정책적으로 육성된 상인이 오사카 상인이라면, 천 년간 일본의 수도라는 자부심과 역사적 전통으로 상도를 이룬 교토 상인이 있다. 또한 모기장 행상으로 시작해 세계 곳곳에 진출하여 합자·회계·마케팅·유통에서 뛰어난 상재를 보여주는 오미 상인이 있고, 질 좋은 목재 생산지로서 일찍이 기계와 공업 분야에서 발군을 실력을 보여준 나고야 상인이 있다. 여기에 서구 근대문물의 최대 수혜자로 세계적인 명품의 천국을 일군 도쿄 긴자 상인이 있다.
“1000년이 넘도록 같은 곳에서 꿋꿋하게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본 노포 상인들의 모습은 더 이상 장사꾼의 모습이 아니라, 고객을 종교로 섬기는 수도자의 면면마저 읽을 수 있다”는 저자는 종업원이 진정한 회사의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당장의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고객에게 신뢰를 주고 지역사회를 돕는 것을 우선으로 치는 일본 상인의 원칙들은 흔들림이 없는 일본의 저력이라고 칭찬한다.
언제나 얕잡아 보기만 한 일본이 옆에 있다. 배척할 건 배척하더라도, 배울 건 배워야하지 않을까.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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