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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33>여행전문가 이기중 전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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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2-01 15:10:13 수정 : 2010-02-01 1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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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술’ 맥주의 참맛 찾아 유럽누비는 ‘보헤미안’
◇외국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더라도 맥주집에서는 금세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기중 교수는 “포도주가 좀 더 개인적인 술이라면 맥주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힘을 가진 대중적인 술이다”고 말한다. 그에게 맥주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오작교와 같은 술이다.
허정호 기자
“여행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여행을 떠나는 과정도 즐겁지만, 여행의 전후단계인 계획을 짜거나 다녀온 뒤 추억하는 즐거움도 탁월해요.”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는 여행전문가인 이기중 전남대 교수의 생각은 첫 배낭여행을 떠나는 젊은 학생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 교수의 말을 듣는 순간 약간 밋밋했다. 세계 90여개 나라를 살펴본 그도 일반인과 특별한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그는 요즈음 여행전문가라는 이름보다도 맥주 맛을 찾아 즐기는 ‘비어 헌터’ 혹은 ‘맥주통(通)’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를 만나기 전 고민했다. 시리즈로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을 만나는 공간인데, 맥주와 여행을 논하는 학자를 만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인류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그의 저서와 기고문들을 살펴보았는데도 고민은 해소되지 않았다. 주변에 물어 얻은 의견들 중에서 “우리가 아는 것 같지만 제대로 모르는 분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말이 와닿았다. 주변 교수들과 일부 글쟁이의 평을 들었다. 그를 아는 이들의 말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순수 그 자체,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나이보다 젊은 감각, 작은 것에서 의미를 끄집어내는 인류학자의 더듬이….”

칭찬 위주의 좋은 평가들이었다. 휴일에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뒤, 사직공원 건너편에서 그를 만났다. ‘맥주와 여행 전문가’이기에 휴일 오후 만남도 괜찮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빌딩 숲을 걸어나오는 그의 움직임과 말투가 경쾌하다. 여행과 맥주. 두 주제에 대해서 그가 먼저 말을 꺼낸다. 그리고 이내 전문가적인 식견을 드러냈다.

“기자들은 술 자주 마시지요? 그런데 제대로 알고 마시거나 올바로 마시는 분들은 거의 없을 걸요. 맥주는 1만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했지만 꽃을 피운 건 유럽입니다.”

유럽에서도 영국, 아일랜드, 체코, 독일, 벨기에 5개 나라에서 맥주문화가 발달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가 포도주의 나라라면, 이들 5개 나라는 맥주의 나라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에일과 스타우트의 고장이며, 필즈너가 태어난 체코는 1인당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독일은 맥주가 넘치는 나라이며, 벨기에는 맥주의 종류가 다양해 맥주 박람회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이 교수에 따르면 맥주를 아는 것은 그 나라 문화와 자연환경을 아는 것이다. 모든 맥주는 보리와 홉, 효모, 물로 만든다. 나라마다 4가지 중에 비율을 달리하고, 재료를 달리하는 맥주가 발달해 있다.

“체코를 보세요. 체코의 맥주는 필즈너인데, 이 맥주를 생산하는 고장이 물이 맑기로 유명해요. 당연히 맑은 맥주 생산이 가능했지요. 맥주의 원료가 되는 보리는 배수가 잘 되고 일조량이 적은 땅에서 잘 자라요.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주는 일조량이 많고, 경사진 토양에서 잘 자라는 것과 비교되지요.”

저녁 6시에 만나 취재를 계속하자, 이 교수는 “맥주를 접하러 가자”고 이끈다. “일요일이라서 마땅한 곳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며 “맥주를 마시려면 저녁을 먹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시장이 반찬’이 아니라 ‘시장이 안주’인 셈이다.

“맥주는 술과 거품의 비율이 7대 3일 때 가장 이상적이지요. 거품은 맥주에서 탄산가스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신선도를 유지합니다. 그러니 피처로 마시면 공기와 접촉 면이 늘어나고 기다려야 하기에 탄산가스가 많이 새나가지요. 서로 따라주는 기쁨은 있지만 피처는 ‘맛’으로는 별로지요.”

맥주로 저녁을 대신하고, 맥주 이야기로만 3차 술자리가 이어졌다. 맥주집에서 굳이 ‘전용잔’을 주문하는 그의 모습이 싫지 않다. 맥주잔의 모양에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맥주잔은 맥주의 향, 거품, 맛, 온도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전용잔에 마시는 게 좋다. 간혹 맥주 광고에 캔과 병으로 멋지게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있는데, 이 광고를 낸 맥주회사는 ‘유죄’다.

“맥주에도 전용잔이 있어요. 자 봐요. 다른 테이블의 잔들은 죄다 똑같아요. 맛을 제대로 낼 수가 없어요. 유럽에서는 호가든이나 하이네킨, 쾰슈 등 모두 전용잔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맥주회사와 수입회사들은 노력을 안 해요. 고객이라면 제대로 된 잔으로 맥주를 마실 권리가 있어요.”

그의 신간 ‘유럽 맥주 견문록’에서 접한 내용이 반복되기도 했지만, 세상은 이렇게 배울 게 많다. 그는 자유롭고 게으른 여행을 즐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어디에 며칠 묵을까 미리 정하지 않는다. 여행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 떠나고, 마음에 들면 몇 주 동안 머문다.

“여행은 아무나 갈 수 있어요. 저 또한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말입니다.”

특정 지역에 가중치를 주지 않고 90여개 나라를 여행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그가 특정 분야와 지역에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교수라면 말이다. 그는 교수가 아니었어도 여행자로 살아갔을 듯하다. 청년 시절 이후 그의 삶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그가 가진 여행 팁은 무엇일까. 이 교수는 저서 ‘동유럽에서 보헤미안을 만나다’에서 “무엇보다도 첫 단추와 끝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동유럽 여행의 시작은 체코 프라하가 적격이라고 여긴다. 다른 나라로 드나들기 편리하고, 볼 것이 많아 지루하지 않은 강점을 갖춘 곳이라고 한다. 그에게 여행의 의미를 물었다.

“해외여행을 하면 스스로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요. 저도 북유럽을 둘러본 뒤에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소득의 50% 가깝게 세금을 내는 북유럽 사람들의 복지수준은 월등하지만 생활은 소박하잖아요.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 고급 차와 명품을 사는데, 사치풍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일이지요.”

그는 “택시의 수준이 한 나라와 도시의 수준을 드러낸다”며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때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다”고 설명한다. 그런 점에서 선진적인 시스템을 구축했으면서도, 한 박자 느린 여행이 가능한 북유럽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3년 전인 2006년 덴마크에 갔을 때다.

“덴마크에서는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우선권이 있어요. 자전거 우선 정책인데, 자동차보다 먼저 신호를 받고, 차도와 나란히 전용도로가 있어요. 보관서도 따로 마련돼 있어요. 100년 전 세계 최초로 자전거 도로를 만든 힘이지요.”

맥주와 자전거에서 보듯, 인류학을 전공하는 여행자로서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다른 문화의 장점이 우리 사회에서도 잘 활용될 수 있다는 믿음은 이 교수를 지탱하는 힘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늘 메모를 하고,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유다. 그와 절친한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의 말은 이 교수의 세계를 향한 여정의 의미를 잘 드러낸다.

“이기중 교수의 끝없는 세상에 대한 관심은 교수 개인의 관심이 아니라 문화와 인류학의 가치를 아는 학자의 발걸음과 눈매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힘이 축적될 때 우리 문화의 수준과 격이 높아지는 거지요.”

bali@segye.com

■이기중 교수는…

1960년 서울 출생.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 서강대에서 경제학과 졸업 후 종교학 석사학위 취득. 미국 템플대에서 영화와 영상인류학을 전공해 석사·박사학위 취득. 여행에서 얻는 지혜가 삶의 자양분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지적 보헤미안’이다. 맥주는 ‘음식’이며 여행의 동반자라고 여긴다. 세상에는 다른 것을 포기하면서 ‘떠나는 사람’과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떠나지 못하는 사람’으로 구별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떠나는 학자’다.

●저서

‘동유럽에서 보헤미안을 만나다’ ‘북유럽 백야여행’ ‘유럽 맥주 견문록’ ‘북극의 나눅’ ‘Wedding Through Camera Eyes’(미국인류학회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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