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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브랜드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입력 : 2010-06-11 23:27:41 수정 : 2010-06-11 23: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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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기업의 음습한 이면 고발
28개국 발로 뛰면서 증거 수집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조깅 하며, 맥도날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로 식사를 해결한 뒤 IBM 컴퓨터 앞에 앉아 스타벅스 커피로 졸음을 쫓는다. 어느 틈엔가 주위는 온통 거대 기업의 브랜드 일색이다. 거대 브랜드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카르텔을 구성해 전세계를 요리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쫓아 거대한 부의 성을 쌓는다. 제3세계는 이들의 가장 적당한 먹잇감이다. 브랜드를 앞세운 다국적 기업들은 이제 각국 정부들을 대체할 만큼 힘이 세졌다. 그러나 이들은 주주들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기업이 주도하는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소비자들의 이익은 외면하다시피 한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 브랜드의 뒤편에는 과연 무엇이 존재하는가”

나오미 클라인 지음/이은진 옮김/살림Biz/3만원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나오미 클라인 지음/이은진 옮김/살림Biz/3만원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 저널리스트이자 반세계화를 이끄는 진보주의 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은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을 통해 다국적 기업들의 음습한 이면을 들춰내 고발한다. 이 책은 지난 2000년 ‘노 로고’라는 제목으로 출판돼 전세계 환경·소비자·인권운동가들의 호응을 받았다. 2002년 국내 일간지에 처음 소개됐으며, 이번에 국내에서 첫 완역판이 나왔다.

저자는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들의 행태에 비판의 초점을 맞춘다. 인재와 쾌적한 근무 환경, 고 연봉을 자랑하는 다국적 기업들. 이들 기업은 많은 젊은이가 선망하는 그럴듯한 좋은 직장이지만, 지구촌 반대편에선 노동자들을 쥐어짜내 제품을 생산한다. 운동화는 노동 착취가 자행되는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된다. ‘바비인형’이 입는 작은 의상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어린이 노동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저자는 폭로한다. 실례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스타벅스에서 파는 ‘라떼’는 뜨거운 태양 아래 노동자들이 피땀을 흘리는 과테말라 농장에서 나온 것이다. 셸사가 파는 석유는 오염되고 메마른 니제르 델타 지역에서 뽑아 올린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한 행사장에서 시민운동가가 던진 케이크를 맞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저자는 출간 당시 향후를 예견하는 경제 전망서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당시 서술은 오늘날 현실에 그대로 들어맞았다. 나이키의 세계화 전략은 절묘했다. 단순히 운동화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회사로 변신했다. 스타벅스는 커피 체인점이 아니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고, 그 결과 이들 브랜드는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그러는 사이 경제적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문화적 선택권은 더욱 줄어들었다.

저자는 “다국적 기업들이 어마어마한 이윤을 뽑아내고자 가난한 국가들을 착취하는 곳이 바로 지구촌이라 불리는 마을”이라고 질타한다. 그는 “첨단 과학기술과 다양한 일자리를 통해 전 세계인에게 평등한 활동 영역이 생겨날 거라는 브랜드 광고는 환상”이라고 단정했다.

저자의 고발은 이어진다.

◇미국의 ‘그린피스’운동가들이 주유소 간판에 사람을 매다는 퍼포먼스를 통해 다국적기업을 비판하고 있다.
“빌 게이츠도 지구촌이라는 마을에 살면서 550억 달러의 재산을 축적했다. 그러나 그가 세운 마이크로소프트사 직원의 3분의 1은 임시직이다. IBM은 자사의 기술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IBM의 세계적 위상은 컴퓨터 칩과 전력을 생산하는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저자는 출간 10주년 기념판 서문에 “오바마 행정부를 평가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오바마가 ‘상징’은 좋아하면서도, 도덕적 원칙에 따라 밀고 나가려는 ‘의지’는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오바마가 악명높은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아프간의 바그람 수용소 확장을 그대로 밀고 나간 것이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제국주의시대 이래로 서구 소비자들이 제3세계에서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고 선전하는 것을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제3세계는 언제나 제1세계의 안락한 삶을 위해 존재해왔다고 저자는 통박한다. 이제는 무기가 아니라 다국적기업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모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다국적기업의 화려한 브랜드 이면에는 음습하고 저열한 세계화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들은 정부보다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우리의 생활과 사고방식까지 결정하고 있다. 과연 세계화라는 ‘가면’ 아래 이행되는 코퍼러티즘의 무자비한 공세에 맞설 실행 가능한 대안은 존재하는가”라고 독자들에게 반문한다. 저자는 다국적 브랜드의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28개국을 발로 체험하면서 실상을 파헤치고 증거를 수집했다.

출판사측은 “반 세계화 운동의 ‘바이블’이 된 이 책은 출간 첫해인 2000년 ‘캐나다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지금까지 전세계 28개국에서 100만부가 넘게 팔려나갔다”고 소개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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