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고령에도 힘있는 목소리 여전
30년만에 옛 추상화 공개 전시회도 흰색 구두와 양복, 빨간 셔츠의 김흥수 화백. 지난 주말 평창동 김흥수미술관에서 만난 91세 고령의 김 화백은 휠체어에 의지한 모습만 빼면 10년 전 인터뷰 때의 모습 그대로다. 귀가 어두워지고 때론 기억을 더듬느라 대화가 잠시 끊어지기도 했지만 목소리엔 여전히 힘이 실려 있었다.
1992년 제자 장수현씨와 43세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해 세간의 화제가 된 사실을 상기시키며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다. 질문에 사모님이란 표현을 썼더니 대뜸 그가 “부인? 아니야∼!”라고 해 잠시 당혹스러웠다. 이어 “동반자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추상과 구상을 한 화폭에 수렴한 ‘하모니즘’을 평생 추구해온 김흥수 화백. 그는 “이질적인 것의 조화에서 풍요로움이 나온다”고 말했다. 김 화백 뒤에 보이는 흑백사진은 1954년 서울 반도호텔에 ‘한국의 봄’ 벽화를 그리던 30대 시절의 모습이다. 그는 이 벽화를 그려주고 받은 돈 3000달러를 들고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
동석했던 부인이 쑥스러운 듯 자리를 비켰다. “예쁘고 말고를 떠나 절실한 사람이야. 나에게 자기 생명을 바치고 청춘을 바치고 일생을 바친 사람이야. 솔직히 자기 일을 했다면 큰 작가가 됐을 거야.”
올 들어 그는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 소품 유화작업마저도 중단했다. 요즘엔 누드 드로잉 작업만 간간이 할 뿐이다.
“6·25전쟁이 끝나고 1954년 파리에 갔다가 그곳 학생들이 누드를 그리고 있는 것을 봤어. 바로 이런 광경이 평화라는 생각을 했지. 평화가 아니면 누드화가 안 나와.” 벌거벗은 여인에 대한 집요한 탐구는 평화의식에서 비롯됐다는 게 김 화백의 설명이다.
그는 구상과 추상의 조화인 ‘하모니즘’을 평생 천착해 왔다. “주관을 주관으로 해석한 초현실주의, 객관을 객관으로 묘사한 리얼리즘, 주관을 객관으로 표현한 인상파, 객관을 주관으로 형상화한 추상주의 등을 모두 수렴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 모토야. 주관과 객관의 통합이지.”
김 화백은 하모니즘은 “내 것을 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6·25전쟁 때 피란 중 부산에서 권옥연, 박고석 등 화가 몇 명이 다방에 앉아서 신문을 보다가 ‘프랑스 파리에서 추상화가 시작됐다’는 기사를 읽고 ‘우리도 추상을 시작하자’는 말을 했었지. 하지만 무조건 모방보다는 고민을 많이 했지.”
김 화백이 일반에게 30년 만에 공개하는 1960∼70년대 추상화 작품전이 서울 삼청동 에프앤아트 스페이스에서 10월16일까지 열린다. 하모니즘 태동의 배경이 된 모자이크 기법의 대형 추상회화 시리즈 작품이 선보인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02)725-7114
편완식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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