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드러진 시도 ‘찬사’ 올해 제54회를 맞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은 비체 쿠리거는 ‘일루미네이션’을 주제로 정하고, 관람객들이 전통적인 인식 경험에서 벗어나 현대적으로 접근하는 길을 밝혀줄 열쇠로 베니스 17세기 매너리즘 화가 야코포 틴토레토 그림 3점을 선택했다. 주제인 일루미-네이션(ILLUMI; 빛·영감 - NATION ;국가)이 여러 가지 복합적인 뜻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 쿠리거는 각 국가와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이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이슈로 다뤄진다고 보았다. 그러한 이유로 전시가 이뤄지는 베니스의 지역적·문화적·역사적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틴토레토를 과감하게 전시장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잠이 든 헤르마프로디테’ (2008-2010) |
베니스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기획되는 많은 협력전과 기획전이 베니스 바로크식 건물에서 이뤄지고 있고, 역사적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전시 공간은 작품을 기획하고 설치하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중요 요소로 다뤄지고 있다. 피노 컬렉션이 옛 세관건물을 리노베이션해 개관한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과 함께 운영하는 팔라초 그라시 역시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올해 비엔날레를 위해 팔라초 그라시에서 준비한 전시 ‘The World Belongs to You’는 스위스 큐레이터 캐롤라인 부르주아가 20명의 작가를 초청해 장소 특정적인 작품으로 채워넣어 미술관의 깨끗한 하얀 벽, 화이트 큐브가 줄 수 없는 효과를 불어넣어 주었다. 프라다 재단도 역시 그동안 사용하던 치니 재단의 건물을 내놓고 동시대의 카 코너를 리노베이션해 관람객을 맞이했다.
전통과 현대를 연결해 재해석하는 시도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베니스 18세기 미술관 카 레초니코에서 선보인 베리 익스 볼의 ‘초상과 명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카 레초니코 박물관은 레초니코 가문의 소장품을 비롯해 17∼18세기 베니스 초상미술과 티에폴로의 천장 프레스코화, 화려한 바로크식 가구 들로 가득 차 있다. 이곳에 설치된 조각가 익스 볼의 조작 작품들은 전시 장소와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가 각 방마다 가져다 놓은 돌조각은 실내를 가득 채우는 가구, 벽면과 천장 장식의 색채를 돌 자체가 품고 태어난 듯한 느낌을 뿜어낸다. 전통적인 초상이라는 장르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지극히 현대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익스 볼의 초상조각은 인물의 두상을 3D로 정교하게 스캔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다듬고 변형, CNC 로봇으로 완성한다. 작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기계의 힘을 빌리더라도 수정하고 연마해서 기계의 흔적을 지우고 손맛을 살리던 기존의 방법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기계의 흔적을 살리기 위해 손으로 수정하는 과정에서도 기계의 날이 남겨놓은 자국을 덮지 않는 선까지만 일을 한다고 한다.
왼쪽 ‘질투’ (2008-2010), 오른쪽 ‘베일을 쓴 정숙/여인’ (2008-2009) |
왼쪽 ‘예술가의 초상’ (루카스 마이클. 2000-2005), 오른쪽 ‘컬렉터의 초상’ (L 마티올리. 2000-2005) |
익스 볼의 검은 ‘헤르마프로디테’는 베니스의 섬세한 유리공예로 빚어진 거대한 샹들리에 아래에 놓여 바로크의 특징인 빛과 그림자의 큰 대조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 작품을 샹들리에 아래 가져다 놓기 위해 꼬박 하루를 씨름했다고 한다.
베니스(이탈리아)=편완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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