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전, 스마트폰·고해상 모니터 활용…관람객에 ‘세밀하고 친밀한 감상’ 선물
미술판에 소통 바람이 불고 있다. 소통을 주제로 삼거나 감성적 전시방법을 적극 활용해 대중과 소통을 적극 모색하기도 한다.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특징을 보였던 1980년대 미술과 달리 1990년대 작가들은 개인과 사회의 소통에 큰 관심을 보이는 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개인의 일상적인 삶에서 사회와 인식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관계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고미술 전시에선 젊은 층에 친화적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고리타분한 인식을 깨고 대중에 어필하고 있다. 마르셀 뒤샹은 “창조적인 예술은 작가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감상자가 작품의 내적인 가치를 해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비로소 예술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소통은 일상사에서뿐 아니라 예술에서도 중요한 화두인 셈이다.
‘색채에는 소통을 위한 힘’이 있다는 믿음에서 작업하는 안리 살라의 비디오 작업 ‘Dammi I Colori(색칠해 주세요)’. |
덕수궁미술관에서 12월4일까지 열리는 ‘소통의 기술’전은 소통을 주제로 세계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 안리 살라(Anri Sala), 함양아,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호르헤 파르도(Jorge Pardo) 4명의 대표 작품 10여 점을 소개하는 자리다.
알바니아 태생의 안리 살라는 미디어 작가로 베를린과 파리를 무대로 작업하는 작가다. 유럽의 가장 폐쇄적인 국가였던 알바니아 출신으로 초기의 그의 관심은 폐쇄적인 사회에서의 소통과 개인의 관계에 있었다. 비디오 작업 ‘Dammi I Colori(색칠해주세요)’는 알바니아 수도에 소통과 활기를 불어넣고자 시작한 프로젝트다. 평양처럼 음울한 알바니아의 수도에서 작가가 소통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색채다. 무채색의 도시에 붉은색과 노란색, 푸른색의 색채가 입혀지면서 티라나의 도시풍경이 변하고, 사람들의 삶이 변하기를 기대한다. ‘색채에는 소통을 위한 힘’이 있다는 믿음에서다.
덕수궁미술관 전시에 출품된 함양아 작가의 네온 사인 작품 ‘I came for 행복/항복’. 작가는 관객에게 “행복이 뭔가”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질 등 그 어느것에 대한 항복이 아닐까 반문해 본다. |
알제리 출신의 필립 파레노 연극무대와 같은 전시장의 설치를 통해 현실을 가공하는 예술의 힘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 신과 인간이 소통하는 통로로 이용되었듯이 미술관과 전시장은 상상력과 현실이 교차하는 통로가 된다. ‘The Boy from Mars(화성에서 온 소년)’은 태국 치앙 마이i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건축가 프랑소와 로체가 디자인한 건물과 그 건축물에 필요한 전기를 제공하는 물소의 모습을 촬영한 작품이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날개가 달린 건물 앞으로 전기모터를 돌리기 위해 느릿느릿 움직이는 물소, 그리고 데빈드라 반하트(Devendra Banhart)의 음악이 어우러져 작가와 작가의 친구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쿠바 출신의 호르헤 파르도는 일상의 디자인과 건축, 예술을 함께 엮어서 작업한다.‘Bulgogi(불고기)’는 작가가 살고 있는 LA의 한인문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가정집 방을 연상케 하는 룸에는 작가가 수집한 LA 초기 이주 한국인들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바닥에 깔린 화려한 무늬의 카펫과 쿠션들은 강렬하고 따뜻한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고기’라는 제목과 달리 몇 개의 낡은 이미지를 제외하고 한국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는 더욱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한국의 문화가 이민을 통해 미국사회에 맞추어 변형되고, 다시 쿠바에서 온 작가에 의해 재구성 되면서 본래의 맥락은 빛이 바래고 원래의 일부만이 보존되어 새로운 문화로 재탄생한 것이다. 소통과 교류는 선택적이고 무작위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또한 창조적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작품이다.
미국 소설가 폴 오스터(Paul Auster)는 ‘뉴욕 3부작(The New York Trilogy)’에서 “삶을 살면 살수록 사람들은 다른 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잃어가게 된다. 다른 이를 이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자기 자신조차 결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소통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다.
리움에 전시중인 정조의 화성 행차를 그린 작품 중 하나인 ‘환어행렬도’. 관람객은 맨눈으로 자세히 보기 힘든 그림의 세부까지 갤럭시탭과 고해상도 모니터를 활용해 자세히 볼 수 있다. |
전시장의 작품들은 아름다움을 감상하거나 미학적 기준을 재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술작품과의 소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술사적 지식이 아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공감과 뜻밖의 순간에 다가오는 자기성찰이다. 오는 30일까지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풍속인물화대전(風俗人物畵大展)’을 보려는 관람객들이 긴 줄을 서고 있는 이유다, 지난 주말엔 300m가량 줄을 서 시간 반 가량 기다려서야 전시를 볼 수 있었을 정도다. 중장년층 뿐 아니라 젊은층까지 대거 전시장을 찾게 만드는 중심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자리하고 있다.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은 관람객이 몰리는 현상에 대해 “혜원 그림은 색채가 아름답고 조선 후기 풍류객들의 놀이 등 감각적인 소재를 많이 그려 현대인들의 감성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며 “강렬한 채색과 인간의 본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점이 현대인들의 감성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작품을 실제로 본다는 ‘감동’도 한 몫하고 있다. 관람료가 없어 부담도 없다.
내년 1월29일까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조선화원대전(朝鮮畵員大展)’에도 주말엔 10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루고 있다. 관람료 7000원(초중고생 4000원)임에도 고미술 전시로는 많은 관람객이다. 전시에 디지털기술을 적극 수용해 자칫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전통회화 전시에 대한 통념을 깨고 있기 때문이다. 정조의 화성 행차를 그린 작품 중 하나인 ‘환어행렬도’에는 작품의 세부를 효과적으로 볼 수 있도록 갤럭시탭과 고해상도 모니터를 활용한 인터렉티브 장비를 설치함으로써 관람객들이 실제 장소에 들어가서 관람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참여형 큐레이터에서 콘서트까지
25일∼11월4일 이천아트홀에서 펼쳐지는 이천조각가협회정기전인 ‘퍼블릭과 아트의 경계선에서’전은 ‘예술은 소수의 전유물, 어려운 것’이라는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대중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변화해가는 순수예술의 현재 모습과 미래 가치를 보여주고자 하는 자리다. 큐레이터 교육을 받은 일반인들이 큐레이터가 되어 전시를 진행한다. 마케팅과 홍보, 아트상품 개발 등 대중과 작가를 연결해주는 메신저의 역할을 맡고 있다. 29일 숙명아트센터 씨어터S에서 열리는 ‘화·통 콘서트’는 미술 평론가 손철주의 해설과 소리꾼 남상일의 협연 등이 어우러지는 자리다. 옛 그림과 국악이 한자리에서 만나 공감하게 된다. 이인상의 ‘와운’과 작자미상의 ‘까치 호랑이’등의 그림 속 동물들의 의미를 알아보고 강세황의 ‘자화상’과 김희겸의 ‘석천한유도’ 등의 그림을 놓고 당시 선비들의 마음과 그들의 생활방식을 살펴본다.
심사정의 ‘봉접귀비’, 이하응의 ‘난초’ 등을 배경으로 꽃과 그 의미를, 신윤복의 ‘월하정인’, ‘소년전홍’ 등 그림 속에 담긴 의미와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 어울리는 춤, 우리 소리와 퓨전국악연주가 곁들여진다.
편완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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