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유산 포기… 무소유 실천한 성자
개종 강요 않고 실천으로 타종교 설득 사탄이 자꾸 오라 손짓하며 속삭였다. “여기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어. 인생 뭐 있나. 잠시 놀다가.” 괴로웠다. 아니 견딜 수 없었다. 정결을 하느님께 서약했지만 때로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불타오르는 여인의 내음이 그리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주님의 기도’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이 사탄의 감미로운 속삭임…. 가자. 가시 달린 장미 밭으로!
지난 21일(현지시간) 찾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의 주도 페루자 인근 소도시인 아시시의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걸린 성인 프란치스코(1182∼1226)는 그렇게 다가왔다. 가시 밭에서 분투하고 절규하자 하느님이 보낸 천사들이 가시를 제거해주는 그림 속의 너무나 인간적인 프란치스코. 후세 사람들은 그를 ‘제2의 예수 그리스도’라 불렀다.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동상. 그의 허리띠가 보관된 유리병 옆에는 ‘프란치스코 1226년 10월 3일 선종’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는 무소유를 실천한 프란치스코의 행적들이 잘 보존돼 있었다. 프란치스코가 임종 당시 맸던 허리띠가 눈길을 끌었다. 매듭이 세 개다. 매듭의 의미는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나와 ‘클라라 성당’ 앞에서 만난 ‘작은 형제회’ 구알티에로(67) 수사가 일러줬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3개 분파 중 하나인 ‘작은 형제회’ 소속인 그는 “청빈, 정결, 순명”이라고 답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은 누구나 매듭이 셋인 허리띠를 하고 있다. 입회한 지 51년 됐다는 구알티에로 수사는 매듭의 현대적인 의미에 대해 “이 생은 잠시 지나가는 순례의 과정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평소 삶에서 단순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죄수 처형장 위에 세워진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
‘자발적 가난’과 ‘겸손’을 실천한 행적과 함께 타 종교와 대화한 프란치스코의 삶을 새롭게 조명할 때다. 그는 가톨릭 신앙을 수용하지 않은 사람들을 무력으로 개종시키려 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 상대가 판단하게 했다. 대표적인 일화가 전해진다. 1219년 동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던 그는 무슬림 지역인 사라센 여행 중 통치자인 술탄의 포로가 됐다. 술탄이 말했다. “네가 불 속을 지나면서 머리카락 하나도 안 탄다면 너를 인정하겠다”고. 프란치스코는 망설임없이 불 속을 걸었다. 결국 술탄은 프란치스코에게 설교할 자유를 허락했다.
욕정에 굴하지 않기 위해 장미 덩굴 위를 구르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담은 그림. 그림 속 장미는 가시가 빠진 장미로 표현돼 있다. |
아시시(이탈리아)=글·사진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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