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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을 품은 색이 주는 위안…몸에 담긴 생명의 경이 ‘풍성한 5월 화단’

입력 : 2012-05-21 17:33:10 수정 : 2012-05-21 17: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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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전시장은 늘 풍요롭다. 신록만큼이나 산뜻한 이미지들이 아우성을 친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성찰과 아픈 역사를 되새김질해 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기존의 길들여진 시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져 볼 기회다.

금호미술관에 전시 중인 김태호 작가의 작품. 단색조에 가까운 화면은 언뜻 보면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다양한 색조의 화폭이 어느 순간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서울 금호미술관과 학고재 갤러리(본관)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김태호 작가의 전시는 고정화된 형태가 없다. 사람도 큰 빌딩 위에서 바라보면 점이 되듯, 큰 유채밭도 하나의 커다란 색면으로 흡수된다. 작가에게 근본적 기호는 색이다. 해질녘의 모호함 같기도 하다. 작가는 “나이 50∼60대가 되면 시시비비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삶을 바라보게 되는 모양새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작가는 적게는 30번, 많게는 100번 정도 캔버스에 색을 입힌다. 시선의 각도에 따라 화폭은 얼굴 색을 달리한다. 전시장 바닥과 벽면, 화폭이 어우러진 설치작품은 눈 덮인 호수 풍경을 연상시킨다. 마음풍경이다.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작가는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위안이 되는 풍경이었으면 한다. 6월 3일까지 금호미술관, 6월 10일까지 학고재 갤러리. (02)720-5114, 745-1722

사비나미술관에 전시된 한기창 작가의 설치작품 ‘수족관’. 엑스레이 필름 속 인체 풍경과 물고기 드로잉의 어우러짐이 화려해 마치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듯하다.
사비나미술관에서 6월16일까지 전시를 갖는 한기창 작가는 엑스레이 필름을 이용해 작업을 한다. 엑스레이로 촬영된 인체의 이미지와 현미경으로 확대된 인체조직의 드로잉이 어우러져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여기에 LED 빛의 가세는 환상적이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사를 넘나드는 긴 투병생활을 경험했던 작가에게 엑스레이 필름은 각별하게 다가왔다.

“수술 이후에 내 뼈가 굳어져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엑스레이 필름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경이로웠습니다. 생명의 신비로움이었지요.”

그는 근육질은 대지를 닮았고, 양수는 바다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 자연이란 얘기다. 이번 전시에서는 물고기와 해초의 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수족관 설치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자연의 순환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02)736-4371

낚싯줄에 숯을 매다는 설치작업으로 이름을 알린 박선기 작가는 6월10일까지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전시를 갖는다. 흔들리는 듯 착시효과를 극적으로 연출하는 작품들에선 허상이 넘실거리고, 종국엔 그것이 자연의 끝자락(숯)임을 암시하고 있다. 색즉시공이다. 정물을 압축한 듯한 조형물을 다시 잘게 잘라 조립한 작품들은 시각분열을 초래한다. 드로잉을 같은 방식으로 잘라붙인 새 작품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착시를 통해 우리의 고정된 관념을 부수려고 한다. 어떤 고정된 이데올로기를 가진 이들은 생각하는 것에 게으른 자들이란 경구를 환기시켜 준다. (02)725-1020

무당 굿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1970년대 단색화 주류에 도전한 이두식 화백은 23일∼6월12일 선화랑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이 화백은 무당의 의상 색이 바로 엑스터시에 이르는 색이라는 것을 단번에 느낌으로 알아차렸다. “설날의 색동저고리, 자수, 혼례복 등에서 우리 민족의 색채 구사능력이 뛰어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무속이나 단청도 예외가 아니지요.”

그는 오색 만장이 뒤따르는 장례행렬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함의 극치라고 말한다. 저절로 페스티벌이 되는 색이라 했다. 서양화 물감으로 작가는 선과 운필을 중시하는 수묵화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우리 색의 하모니는 화폭에서 축제가 된다. (02)734-0458

김호석 화백이 그린 ‘법정 스님’. 무소유를 설파한 스님의 사리를 그림 안료로 사용해 화제가 되고 있다.
수묵 인물화의 대가인 김호석 화백은 23일부터 6월5일까지 공아트스페이스에서 법정 스님의 초상화 등을 선보인다. 생전에 무소유 정신을 설파했던 법정 스님의 초상화는 2년 전 다비식을 치를 때 수습한 사리를 안료로 삼은 것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현대불교의 상징과도 같은 조계종 전 종정 성철 스님과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인물화도 선보인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서민들의 삶을 표현한 작품과 세밀한 필치가 돋보이는 동물화도 볼 수 있다. (02)730-1144

이밖에도 6월10일까지 학고재 갤러리 신관에서 전시를 여는 사진작가 노순택은 분단환경이 만들어낸 큰 틀에서 ‘5월의 광주’를 다시 반추해 본다. ‘망각의 기계’란 화두가 잔잔한 울림을 던져준다. (02)739-4938

뉴욕에서 활동하는 최선명 작가는 단색화를 빛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7월1일까지 시몬갤러리에서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빛이 된다면 시공간이 하나로 일치되는 세계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02)549-3031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전관에서 27일까지 작품전을 여는 이상원 작가는 회화 영상 드로잉 등을 통해 여가문화 등에서 획일적이고 패턴화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드러낸다. (02)720-5789

6월14일까지 김종영 미술관에서 전시를 여는 정직성 작가는 도시의 급속한 개발현장을 경쾌한 붓 터치로 담아내고 있다. 비루하고 속된 도시와, 인간의 내면에 깃든 세속적 욕망이 유쾌한 추상이 됐다. “그래도 삶은 아름다운 것이여”라며 힘든 이들을 위로하는 듯하다. (02)3217-6484

편완식 선임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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