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 주장 충분히 설득력 있지만
효과 거둘 수 있다는 과신은 금물” 저금리는 양날의 칼과 같다. 경기를 살릴 수도 있지만 거꾸로 악화시킬 수도 있다. 특히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경제에서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 소비와 투자는 늘지 않고 버블 형성, 구조조정 지연과 같은 부작용만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6개월째 연 2.75%로 묶어둔 데는 이런 우려도 깔려 있다. 요점은 과연 금리인하 효과가 있느냐는 것이다.
박승(사진) 전 한은 총재는 이와 관련해 “금리인하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금리를 내려도 경기부양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총재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 금리를 내려도 투자가 늘기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전 총재는 “지금 경제상황을 통화정책으로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통화정책(기준금리결정)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지적은 게리 베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의 견해와 상통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베커 교수는 최근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금의 한국 상황에 대해 “저금리 상태에서 추가로 금리를 내리고 돈을 더 푼다고 경기가 부양될 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전 총재와의 일문일답.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기준금리를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노코멘트다. 전임자로서 금통위(한은 금융통화위원회) 결정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 다만 얘기하자면 세계 경제 흐름, 국내 경기를 감안할 때 금리인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인하 효과를 과신해선 안 될 것이다.”
― 왜 그런가.
“유동성 함정에 빠져 기준금리를 내려도 투자가 늘기 어렵다. 그래서 금리인하 주장이 일리는 있지만 경기부양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다. 우선 실질금리는 이미 제로다. 일본과 같다. 기업의 현금 유보는 사상 최대다. 대기업이 은행 돈을 쓸 이유가 없다. 투자 예상수익이 낮아서, 다시 말해 투자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0.25%포인트 내린다고 해서 안 할 투자를 하지는 않는다. 초저금리인데도 대출수요는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비슷한가.
“일본과 지금 아주 비슷하다. 일본도 초저금리 상태에서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 은행들은 돈 쓸 데가 없어 난리다. 금리인하의 투자 유발 효과가 없는 것이다. 이미 우리도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이다. 특히 일본 장기불황 요인과 같은 것이 많다. 상당히 구조적 요인을 우리도 안고 있다. 고령화, 가계부채, 정부부채, 빈부격차 확대 등등 한마디로 경제 노화 증세다. 경제가 구조적으로 노화 증세를 보이는 것이다.”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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