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염호상 산업부장
정보보안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던 1995년 보안전문기업 안철수연구소를 세운 그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지난 6월 카이스트 종신 교수직을 버리고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안 교수는 국내에 새로운 학문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이다. 바쁜 일과를 쪼개 매주 2∼3차례는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지방을 돌며 리더십과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주제로 강연회를 열고 있다. 서울 여의도 안철수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빠듯한 스케줄로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입가가 부르터 있었다.
인터뷰가 있던 날 아침 한나라당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에서 안철수 교수 등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는 방안을 당 지도부에 건의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는 정치 참여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정치 할 생각은 없나. 개각 때마다 입각설이 나오는데 정치권의 러브콜을 많이 받지 않았나.
“30대 후반부터 국회의원 출마와 여러 직책에 대한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혼자 정치판에 들어가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혼자 들어가 높은 지위에서 대접받고 나오는데 바꾸는 게 없다면 인생 낭비 아닌가. 나 혼자라도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이렇게 살고 있다.”
그의 말은 ‘정치를 안 하겠다’는 것보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할 수도 있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좀더 명확한 입장을 알고 싶어 재차 질문을 던졌으나 ‘한다’ ‘안 한다’는 식의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직장인, 대학생, 네티즌 등 많은 사람이 당신을 좋아한다. 왜 그렇다고 보나.
“우리 사회도 이제는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평가를 중요시하는 것 같다. 과정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중요하다.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키면 큰 힘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살아온 것들 때문에 선호도가 올라간 것 같다. 언론과 23년 간 인터뷰를 했는데 도중에 말을 뒤집거나 한 적이 없다.”
―의사에서 사업가로, 다시 교수로 도전하는 일마다 성과를 냈다. 다음 목표는 뭔가.
“죽고 나면 이름은 안 남기더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게 책 쓰는 일이다. 전환점이 있을 때마다 책을 냈는데 다행히 평이 좋았다. 안 연구소 같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조직에 기여하는 것도 흔적을 남기는 것이고,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면 그것도 보람 있는 일이다. 정치 쪽은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들 말하지 않나.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한꺼번에 등장해 바꿀 수 있지 않으면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것 같다.”
―기업에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어떻게 다른가.
“CEO 출신이 행정을 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과 행정의 차이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버는가, 어떻게 직원들을 평가하고 보상하는가 하는 것이다. 행정은 그 두 가지가 완전히 빠져 있다. 돈을 버는 게 아니고 국민 세금이나 대학 납입금으로 운영된다. 어느 분야에 얼마만큼 돈을 배분하고 자원을 배분하는가의 관점이 중요하다. 돈이라는 게 자기가 번 돈 아니라 국민 세금 또는 학생으로부터 받은 돈이다. 돈을 낸 사람들을 포함해 이해 관계자와 의사소통하고 납득시키는 게 중요하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가 서울 여의도 안철수연구소에서 최근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
“서울대라도 개교 이래 존속해온 학과에서 불렀으면 안 갔을 것이다. 융합대학원은 2년밖에 안 됐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융합대학원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새로운 분야를 창조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다. 지방대학교는 교수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인사규정를 그대로 따르면 나는 교수가 못 된다고 한다. 논문 수나 이런 것 따지면 뽑을 수 없다고 하더라. 갈 수도 없고 제안한 곳도 없었다.”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동시에 동반성장과 관련해서는 “대기업의 특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반된 주장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중소기업 육성을 부르짖으면 대기업을 쥐어박아 돈뺏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어처구니없는 흑백논리다. 결국은 양쪽 다 상생해야 한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같이 커지면 대외적 위험에도 튼튼히 견딜 수 있다. 대기업만 흥하면 위험하다는 건 구멍가게 하는 사람도 안다. 국가 경영자들이 해야 할 일이 중소기업이라는 또 한 축을 만드는 일이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에 대한 생각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좌파 논쟁이다. 꼭 나눈다면 ‘상식’과 ‘비상식’이 좋겠고, 나는 상식파다. 사람들이 빨갱이냐 아니냐를 왜 나눌까. 학자들이 하는 비유가 있다. 평지가 있다. 한쪽에 벽을 쌓으면 필연적으로 그늘과 습기가 생기면서 벌레들이 번식하게 된다. 벽을 없애는 건 벌레들이 제일 싫어한다. 벽에 기대 기득권을 가지는 사람들은 벽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국민 전체에 도움되지 않는 논의를 하고 재단하려고 하는 건 벽이 있음으로써 이익을 얻는 소수 기득권 집단 때문이다.”
―세계 IT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삼켰고 애플은 특허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IT 산업이 위기다. 극복 방안이 있을까.
“아이폰이 등장한 2008년부터 제2의 IT 부흥기가 시작됐는데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아무런 일이 안 일어났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지금부터라도 시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운영체제(OS) 같은 것도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발을 빼면 평생 가도 따라가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발을 담그고 있으면 패러다임이 바뀔 때 기회가 온다. 대기업이 연봉 더 주고 중소기업 소프트웨어 인력 빼가는 일은 하면 안 된다. 신입사원을 뽑아 좋은 시설에서 교육해 인력을 양성하는 게 대기업 몫이다. 대기업이 소프트웨어 개발을 파트너에 맡기는 방법을 취해야지 인력 빼가는 건 가격 후려치기보다 더 나쁜 일이다. 이건희 회장이 소프트웨어를 강조했고 삼성에서 관련 인력을 뽑기 시작할 것이다. 그나마 열악한 국내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흡수하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일을 하면 안 되고 정부도 이를 방조하면 안 된다.”
―정보통신부 같은 IT 정책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옛 정보통신부가 하던 역할을 지금은 여러 부처가 나눠 맡고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정책은 아무도 안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정통부를 부활해 옛날 형태로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규제 일변도 부처가 아니라 ‘리스크 매니지먼트(위기 관리)’에 관심을 가지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 ‘리스크 테이킹(위기 대처)’만 하면서 가다보니 성수대교 붕괴 같은 일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모든 결정이 리스크 테이킹이다. 밖으로 보여지는 것만 신경 쓰다보니 인프라는 썩어 들어가고 있다. 선진국이 되려면 변해야 한다. 외국은 예산의 10%를 보안 쪽에 투입하는데 일하는 데는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 단기적으로는 10%의 예산이 줄어들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미국발 신용위기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세계 경제를 어떻게 보나.
“대공황 이후 강화된 금융 규제가 1980년대 초까지 이어졌고, 빈부격차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80년대 초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대처 총리가 금융규제 풀면서 빈부격차가 커지고 연속적으로 금융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금융에 대한 재규제, 국제 협약 같은 게 시도돼야 할 것 같다. 지금 같은 (금융) 자유화가 존재하는 한 (문제는) 계속될 수 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안철수연구소가 판교에 사옥을 짓고 있다고 들었다. 안연구소의 해외시장 진출은 성과가 있나.
“연건평 1만평쯤 되는데 은행 빚 없이 100% 자체 자금으로 짓는다. 10월4일 10시4분에 입주한다. 1004, 1004다.(웃음) 해외시장 진출은 노력하고 있는데 잘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 아닌가 싶다.”
정리=엄형준 기자, 사진=이제원 기자
▲부산광역시(50) ▲부산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졸업 ▲서울대학교 의학 박사 ▲미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공학 석사·경영학 석사 ▲안철수연구소 이사회의장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아름다운재단 이사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 ▲카이스트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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