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스페인 지원 길터… 경기부양에도 1200억유로 투입 유로존이 유럽 재정안정 기금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회원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데 합의했다. 또 이들 국가 은행에 기금을 직접 수혈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전면적인 구제금융을 피할 길이 열리면서 유로존 재정위기는 한숨 돌리게 됐다.
2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틀 일정으로 개막한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한 유로존 정상은 13시간이 넘는 마라톤 협의 끝에 29일 새벽 이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따르면 유로존 정상은 “유로안정화기구(ESM)·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은 시장 안정을 위해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는 ESM 5000억유로, EFSF 2500억유로로 위기국 국채를 사들여 금리를 낮추겠다는 의미다. 10년물 금리가 연 7%에 육박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국채매입을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생명줄을 던져줬다”고 평가했다.
ESM·EFSF 기금은 또 정부를 통하지 않고 직접 은행에 지원된다. 이 조치는 ‘범유럽 단일 은행 감독기구’가 설치된 후에 가능하다. 은행 감독기구는 올해 말까지 설치될 방침이다. 다만 스페인은 이 기구 설치 전에 사실상 은행 직접 지원의 혜택을 입게 된다. 유로존은 스페인 은행 자본확충을 위해 최대 10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키로 했으나 EFSF 등의 자금이 일단 정부를 거치도록 하는 방식을 택한 바 있다. 그러나 스페인은 이 방식이 정부부채 비율을 높여 국채 금리를 밀어올리고 있다며 EFSF 등의 은행 직접 지원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결국 스페인 요구가 받아들여진 셈이다. 아울러 구제금융을 받아도 그리스처럼 추가적 재정긴축, EU의 철저한 모니터링 등 조건이 따라붙지 않는다.
경기부양을 위해 1200억유로도 투입된다. 유럽개발은행(EIB) 대출여력을 600억유로로 늘리고 사용하지 않은 EU 구조기금 600억유로는 중소기업지원·청년 일자리 창출에 활용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경제·통화 동맹 추진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비관론이 우세하던 이번 정상회의에서 돌파구가 마련된 데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통 큰 양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날 회의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메르켈 총리는 “재정 통합 노력이 먼저”라며 기금의 은행 직접 지원과 국채 매입에 여전히 반대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는 국채시장 안정을 위한 단기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경기부양책을 포함한 어떠한 결정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버텼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가세해 메르켈 총리를 압박했다. 고조되는 위기감과 수시간에 걸친 대화 끝에 메르켈 총리는 반대입장을 철회했다. 다른 정상은 대신 메르켈 총리가 주장한 은행 감독 강화를 위한 단일 기구를 서둘러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메르켈 총리는 회의 후 “우리는 좋은 결정을 했다. 특히 성장과 관련해 그렇다”며 은행 직접 지원 등을 애써 외면했다.
시장은 안도했다. 합의 발표 후 스페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전날 6.896%에서 6.466%로, 이탈리아는 6.182%에서 5.865%로 떨어졌다. 유로화 환율과 유럽 주요 증시도 올랐다.
유럽연합 통계청이 29일 발표한 6월 유로존 물가 상승률은 2.4%로, 16개월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기 진작을 위한 금리 인하 압력을 받던 유럽중앙은행(ECB)은 부담을 덜게 됐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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