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아닌 개인을 중심에 두어야
권영선 KAIST 교수·경제학 |
최근 유럽연합(EU)이 발표한 ‘미래 인터넷 2020’ 자료에 따르면 미래 인터넷은 기존 네트워크 간의 개념을 초월해 다양한 기기와 인간을 자동적으로 상시 연결하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이 자료를 작성한 전문가그룹은 미래 인터넷이 현재보다 진화한 것이기는 하나 추가 기능이 단순히 보완된 것이기보다는 현재의 기능과 형태를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이해할 것을 권고한다.
이처럼 새로운 시각에서 미래 인터넷과 정보통신사회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유럽에 그치지 않고 미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뉴아메리카재단은 미국의 3개 대학 및 중국의 1개 대학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향상에 초점을 둔 인터넷 정책에서 벗어나 정보사회 전체의 시각에서 현재 진행되는 현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한 기초연구를 최근 시작했다. EU와 미국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과거의 연장선상에서는 미래의 인터넷 내지 정보사회를 체계적·포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는 전제이다.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인터넷 강국의 하나이나 유감스럽게도 포괄적이고 심도 있게 다가오는 미래 정보사회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현저히 부족한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관심사는 재래 미디어산업 간 영역 다툼에 쏠려 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구시대적 현안에 발목이 잡혀 미래사회와 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추진된 우리나라 정보통신 정책의 핵심은 통신네트워크의 지속적인 성능 향상을 위한 투자 촉진, 향상된 네트워크를 이용한 신규 사업의 창출, 통신시장에서 경쟁 활성화를 통한 소비자후생 증진, 통신서비스의 보편적 이용 활성화를 통한 계층 간 정보격차 해소라는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모든 정보통신 정책의 중심에는 통신 및 방송 사업자가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직간접적으로 통신사업자를 움직여서 투자 활성화, 신규사업 추진, 시장질서 유지, 정보격차 해소란 공익적 목적도 달성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네트워크 사업자 중심의 상투적 접근법으로는 더 이상 미래 정보사회를 대비하는 데서 다른 나라보다 앞서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점차 자명해지고 있다. 인간이 언제 어느 곳에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해 존재하게 되는 미래 정보사회에서는 더 이상 네트워크 사업자가 중심에 위치하지 않고 정보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개인이 위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래 인터넷은 인간이 중심에 서는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정책의 패러다임도 인간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 이 같은 시각에서 보면 더 이상 가구당 인터넷 보급률과 같은 통계는 정책적으로 유의미한 정보가 아님이 분명해진다. 오히려 이동성 있는 이용자의 물리적인 네트워크 접근 가능성과 경제적인 이용 가능성 측면을 측정하는 통계를 개발하고 축적하는 것이 미래 인터넷 정책을 개발하는 데 긴요하다.
망 중립성 문제, 개방형 네트워크 도입 문제, 계층 간 정보격차 문제, 서비스 경쟁을 추구할 것인지 설비 경쟁을 추구할 것인지와 같은 정책적 문제도 사업자의 시각보다는 이용자의 24시간 인터넷 접속 가능성과 이용 가능성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화국과 가입자 간을 연결하는 가입자망을 정보가 전달되는 종단이라는 시각에서 지금까지 ‘라스트 마일’이라고 불렀으나 정보의 흐름이 시작되는 ‘퍼스트 마일’로 보는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권영선 KAIST 교수·경제학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