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 만지지 마세요.”
이렇게 소리쳐서 자기 몸무게의 두 배가 넘는 성인 남성을 물리치고 성폭행 위기를 빠져나올 수 있는 아동이 얼마나 있을까. 지난 7일 해남에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비명을 질러 성폭행 위기를 모면한 사건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아동성폭력 예방교육은 아이들에게 “누가 만지면 ‘싫어요’ ‘만지지 마세요’라고 말해라” “네 몸은 소중하다”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가르친다. 이런 교육은 위기 상황에서 별 도움이 안 될뿐더러 은연중에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한다”는 명제를 깔고 있어,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인 아이에게 전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도 나온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어른인데 아동·청소년만 교육하고, 아이들에게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만 가르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이제 아동 중심, 피해자 중심의 교육에서 부모와 교사, 지역사회 주민 등 아동을 만나는 모든 성인으로 교육 대상을 확대하고, 성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향으로 아동성폭력 예방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렇게 소리쳐서 자기 몸무게의 두 배가 넘는 성인 남성을 물리치고 성폭행 위기를 빠져나올 수 있는 아동이 얼마나 있을까. 지난 7일 해남에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비명을 질러 성폭행 위기를 모면한 사건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아동성폭력 예방교육은 아이들에게 “누가 만지면 ‘싫어요’ ‘만지지 마세요’라고 말해라” “네 몸은 소중하다”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가르친다. 이런 교육은 위기 상황에서 별 도움이 안 될뿐더러 은연중에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한다”는 명제를 깔고 있어,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인 아이에게 전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도 나온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어른인데 아동·청소년만 교육하고, 아이들에게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만 가르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이제 아동 중심, 피해자 중심의 교육에서 부모와 교사, 지역사회 주민 등 아동을 만나는 모든 성인으로 교육 대상을 확대하고, 성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향으로 아동성폭력 예방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어른은 성폭력예방교육, 아이는 성교육
아무리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라 해도 피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이 닥친다. 특히 맞벌이·한 부모·빈곤 가정 아이들은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태에서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등굣길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김점덕사건이나 집 앞에서 놀던 4세 여아를 유인해 성폭행한 여주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부모가 일 나간 사이 혼자 방치된 아이들이었다. 따라서 부모와 교사뿐 아니라 이웃과 지역사회 등 아동을 만나는 모든 어른들이 아동보호에 동참하고, 아동성폭력 사건이 한 개인·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성폭력 예방교육은 어른이 받고, 아이들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면서 “아동의 행동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성인, 지역사회의 인식부터 바꾸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적인 성폭력 예방전략을 짜서 가해자가 아이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역사회 전체가 감시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13세 미만 아동은 절대 혼자 두지 않는다. 아동을 집이나 차량에 혼자 남겨두는 것을 아동학대로 간주, 이웃이 경찰에 신고할 만큼 아동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돼 있다. 이 교수는 “먼저 지역아동센터나 방과후돌봄교실을 통한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확충돼야 하겠지만, 아이들에게 ‘안돼요!’라고 말하는 저항교육만 시킬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먼저 아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부모들은 청소년기에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성(性)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문화 속에서 자란 탓에 자녀와 성을 주제로 대화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 성폭행 피해자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면서 요즘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어린이집에서부터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지만 6개월에 1회 이상, 연간 6시간에 불과하다. 초·중·고교에서도 겉핥기식 성교육을 하고, 교육과학기술부가 아닌 지자체에서 성교육 매뉴얼을 만드는 탓에 사는 지역에 따라, 동네에 따라 배우는 내용도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학교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집에서 부모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성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마다 개인차가 있지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4∼5세가 되면 자신과 타인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가르쳐야 한다. 남녀의 신체구조와 차이에 대해 “남자는 어른이 돼 아빠가 되면 아기씨를 만들어 고추를 통해 엄마에게 주고, 엄마는 그 씨를 받아 열 달 동안 잘 키워 아기를 낳는다”는 식으로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깨우쳐줘야 한다.
만약 누군가, 가깝게 지내고 잘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몸을 만져 혼란을 느낀다면 부모나 교사에게 언제라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 지속적인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아이와 자주 대화하며 일상생활에서 자기표현을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해 비밀이 없게 해야 한다.
반대로 아이가 다른 친구의 신체 부위를 함부로 만지지 않도록, 나아가 타인의 몸과 인권도 소중하다는 존중과 배려 교육도 해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문제의 근원을 없애기보다는 성폭력 위기 상황을 모면하고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교육이 중심이다. 반면 외국에서는 어려서부터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성교육을 통해 성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경우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할 때는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이른바 ‘경계(Boundary)교육’을 시킨다. 친구의 장난감을 만지더라도 “만져도 되니?”라며 동의를 먼저 구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라는 것이다. 자신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받았을 때, 즉 불쾌감을 느낄 때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한테도 “싫어요”라고 거부 혹은 거절의 의사를 표현해도 된다는 것도 알려줘야 한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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