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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로 파고든 화투판?…초등생까지 '무방비 노출'

입력 : 2008-11-17 09:29:02 수정 : 2008-11-17 09: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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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영화·드라마 영향… '재미삼아하는 노름' 번져
초등생까지 '무방비 노출'
고교 2학년 김모(16)군은 최근 반 친구와 화투 노름인 이른바 ‘섰다’를 했다가 꽤 큰 돈을 잃었다. 드라마를 보고 호기심에 한 건데 교재 값 20만원을 잃고 나자 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며칠 뒤 친구에게 다시 ‘도전’했다가 힘들게 모아 놓은 20여만원을 더 잃었다. 김군은 “그 친구는 ‘타짜’(노름판에서 남을 잘 속이는 재주를 가진 사람)처럼 패를 잘 다뤘다”고 말했다.

요즘 도박 소재 영화와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각 학교 교실에서 노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재미삼아 동전 몇 개를 갖고서 숫자를 맞히는 ‘짤짤이’ 수준이 아니다.

16일 각 학교와 학생들에 따르면 교내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학생들이 화투를 꺼내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화툿장을 두 장씩 나눠 가진 뒤 끗수를 따지는 ‘섰다’는 한 판에 몇 분도 안 걸려 교사들 눈을 피하기도 쉽다.

중학교 3학년 정모(14)군은 “돈을 걸지는 않더라도 재미 삼아 ‘섰다’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학생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인터넷을 통해 화투치는 법과 기술을 접할 수 있다. 각 포털사이트에는 ‘타짜기술’, ‘섰다’는 등의 단어를 검색하면 화투기술이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내걸려 있다.

고교 2학년 신모(16)군은 “책이나 인터넷으로 ‘밑장빼기’나 ‘패숨기기’와 같은 기술을 연습하는 애들도 있다”며 “그런 친구들은 타짜처럼 패를 잘 다루기 때문에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포털사이트에 글을 올린 한 학생은 “친구들 돈을 빼앗아 판돈을 만들고 선배들과 섰다를 하는 데 빠져 있다”면서 “하루에 5만원 정도씩 따다 보니 자꾸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초등학교라고 해서 안전지대는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백모(47·여)씨는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학원에 또래친구들이 화투를 가지고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학교 측에 단속을 요청했으나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걱정했다.

각급 학교는 도박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나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도박에 무방비로 노출된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학교 자체적으로 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토로한다. ‘타짜’라는 TV프로그램 게시판에도 학생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지적하는 글이 수두룩하게 올려져 있다.

수도권 지역 한 교사는 “한 학생에게 주의를 줬더니 ‘손○○○를 ○○해 주시던가요!’라고 대들어 오싹했다”며 “알고 보니 ‘타짜’라는 TV프로그램에 나왔던 말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경기 지역 한 고교 교사는 “최근 교감 선생님이 섰다를 하던 학생들을 적발해 학부모까지 부르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며 “학생들이 몰래 치는 걸 교사가 모두 적발해 낼 순 없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학교 이모(45) 교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고3 교실은 담임이 진학상담이나 수시 2학기 원서 작성에 바빠 사실상 도박 무방비 상태”라며 “도박 폐해를 알리는 학교 차원의 교육도 필요하지만 방송사와 인터넷 포털 등도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갖고 청소년을 도박 등 유해환경에서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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