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만들어가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어요. 당당하게 잘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줬으면 합니다.”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의 딸부자 집 베트남 엄마, 이현주(23·본명 부티덕)씨는 당당함과 열정, 솔직함에서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답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민선(13·중1)·은정(12·초6)·민정(9·초3)양 등 세 딸과 오빠라고 부르는 남편 이해승(46·소방교)씨를 위해 정성껏 아침상을 차린 뒤, 이들이 나가면 투정이 심한 막내딸 민영(2)양과 ‘씨름’을 하며 오전 내내 한국어 공부에 매달린다.
오후에는 어김없이 걸려오는 의정부시청이나 의정부지검, 산업인력공단 등 지역 내 관공서나 다른 다문화가정의 요청에 따라 통역 자원봉사에 나선 뒤 저녁 늦게 들어와 다시 가족을 돌보는 1인 2역의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현주씨 가족이 가족사진이 담긴 앨범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왼쪽부터 큰딸 민선, 둘째딸 은정, 남편 이해승씨, 이현주씨, 셋째딸 민정, 해승씨 앞 막내딸 민영양). |
◆보물 1호는 주민등록증=바쁜 와중에도 현주씨가 애지중지하는 보물 1호는 지난 7월 발급받은 주민등록증이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사람으로 살겠다는 일념으로 생활한 지 4년 만에 어렵사리 발급받은 ‘한국사람 인정증명서’라는 생각에서다.
현주씨는 “진짜 한국사람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가졌는데, 주민등록증이 나오지 않아 애를 태웠다”며 “발급받고 나서는 ‘이젠 내가 진짜 한국사람이 됐구나’하는 기쁨에 매일 지갑에서 꺼내 확인한다”고 전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현주씨는 자신의 얼굴 사진이 붙어있는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이며 자랑했다. 비번이라 집에서 쉬고 있던 남편 해승씨는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띤 채 현주씨를 다독였다.
현주씨가 소방관(119구급대)인 해승씨를 만난 것은 2004년 2월. 2001년 혼자가 된 뒤 딸 셋을 키우던 해승씨는 24시간 격일제 근무 등의 격무로 아이들 돌보는 데 소홀해졌다는 생각이 들자 2004년 베트남을 향했다.
“나이는 들어보였지만 참 푸근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직업도 공무원이라는 데 안심이 됐죠”라며 현주씨는 해승씨와 처음 만났을 당시를 설명했다.
현주씨가 한국사람과 맞선을 보기로 마음을 먹은 데에는 좀 더 나은 미래를 살고 싶어하는 현실적 욕구와 함께 당시 유행하던 한국 드라마가 큰 도움이 됐다.
“당시 베트남에는 한류열풍으로 상륙한 한국 TV 드라마 ‘첫사랑’과 ‘여름향기’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었어요. 배용준·송승헌씨가 남자 주인공으로 출였했는데, 모두 잘생긴 데다 애인이나 아내에게 너무 잘해 많은 베트남 아가씨들이 한국 남자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됐습니다”라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한 뒤 “해승씨의 인상도 좋아 보여 ‘아이들을 잘 돌보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현주씨는 덧붙였다.
자신의 이름도 탤런트 김현주를 닮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라 한국말 ‘이현주’로 정했다. 주민등록상에는 아직 베트남 이름인 ‘부티덕’으로 되어 있지만 ‘현주’로 불러줄 것을 요청해 모두들 ‘현주’라고 부른다. 내년 4월 정식 개명을 할 예정이다.
◆딸부잣집 억척이 베트남 아줌마=하지만 한국의 결혼생활은 드라마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엄마로서 챙겨야 할 아이들은 셋이나 됐고, 남편은 드라마 속의 한국 남자들과 달리 무뚝뚝했다. 가장 큰 괴로움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맞선을 보기 전 베트남에서 3개월간 열심히 한국말을 공부했지만 한국 생활에서는 최소한의 의사소통도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러가지 엉뚱한 일이 생겼고 불필요한 오해가 불거지기도 했다.
“한번은 오빠가 출근을 하면서 빨래를 부탁했는데, 식사준비를 하라는 줄 알고 여러가지 반찬을 만들었다가 퇴근한 오빠에게 핀잔을 들었다”고 현주씨는 말했다. 해승씨도 “그일 때문인지 며칠 뒤에는 퇴근 후 ‘배가 고프다’고 말했는데, 현주가 이번에는 빨래를 하기 시작해 한참을 웃었다”며 현주씨의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현주씨는 곧바로 한국어 공부에 들어갔다. 쾌활한 성격에다 도전 정신이 강한 현주씨는 주변에 변변한 한국어 교육기관이 없자 남편과 아이들에게서 말을 배워나갔다.
하루에 20∼30개의 단어를 ‘한·베 사전’에서 찾거나 남편에게 물어 대학노트에 적은 뒤 계속 읽었다. 발음은 남편의 도움으로 한국외국어대가 운영하는 인터넷사이트를 이용했다. 사용 빈도가 높거나 발음이 어려운 단어는 다시 메모지에 적어 화장실과 주방 가구 등에 붙여놓고 수시로 익혀나갔다.
시간을 쪼개 의정부시에서 운영하는 50시간의 ‘한국어양성과정’과 10시간의 전화상담원 양성교육, 20시간의 ‘다문화가정을 위한 멘토 교육’도 마쳤다. 이런 성격과 열정 때문에 해승씨 친구들은 현주씨를 ‘억척네’라고 부른다.
◆색안경을 벗고 하나되는 교육 있어야 =남편의 부탁으로 베트남 근로자들의 위급상황을 해결해주던 현주씨는 소문이 퍼지면서 인근 경찰서와 산업인력공단, 의정부지법, 의정부지검 등 베트남인들과 접촉이 잦은 기관들의 단골 통역이 됐다. 지금은 연천이나 파주까지 가서 통역을 한다.
매주 1회 의정부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베트남어 전화상담’과 ‘베트남 가정 대표 모임’의 통역도 맡았다. 이런 아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해승씨는 의정부 지역의 ‘한·베 가족모임’을 만들었다. 단순한 친목을 넘어 각 가정의 부인들과 아이들을 지원하는 모임이다.
하지만 아직도 현주씨에겐 한국에서의 생활에 아쉬움이 많다. 물건을 사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차별을 느끼고 외국인 엄마를 둔 아이들이 친구들에게서 가끔 놀림을 받을 때 안타깝다는 현주씨는 “다문화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한국사람 모두가 색안경을 벗고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의정부=김영석 기자 lovekoo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