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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대표 137인 서명 독립청원서 佛만국회의 제출사건 90돌

입력 : 2009-03-30 09:44:31 수정 : 2009-03-30 09: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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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서운동 재조명 바랄뿐”
◇1919년 일제 치하에서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한 곽종석 선생의 손자 곽목(왼쪽)씨가 최중식 선생의 손자 최갑수씨와 함께 29일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 파리장서기념비 앞에 서 있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연금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90년간 잊힌 우국지사들의 독립정신이 올곧게 평가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비건립추진위원회 곽목(76) 회장은 29일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 ‘파리장서비’ 앞에서 묵념한 뒤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곽 회장은 “우리 국민 중에 파리장서운동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묻고선 “정부도 민족대표 33인만을 기릴 뿐이지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한 137분의 지사는 홀대해 왔다”고 안타까워했다.

파리장서운동은 1919년 3·1운동 직후 전국 유림대표 곽종석(1864∼1919)·김복한(1860∼1924) 등 137명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 독립을 호소하는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제1차 유림단 사건으로도 불린다. 이 사건으로 서명자 대부분이 일본 경찰에 체포, 구금됐고 곽종석 등은 감옥에서 순국했다.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는 “3·1운동 당시 33인 중에는 본인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리 서명한 경우도 적지 않았으나 파리장서는 유림대표 137명이 모두 직접 서명했고 국내 독립선언 문건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서명해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곽종석 선생의 손자인 곽 회장은 파리장서운동의 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줄곧 강조했다. 그는 “민족대표 33인 중 5명은 친일로 변절한 것이 역사적 사실인데도 3·1운동 대표자로 33인을 통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국제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낸 것은 파리장서가 유일한 만큼 합당한 공적을 평가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곽 회장은 73년 장충단공원에 파리장서비가 세워진 뒤 30년 넘게 사비를 털어 파리장서운동 알리기에 매진하고 있다.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현재 경남 거창, 밀양 등 전국 7곳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는 “돈이 문제가 아니고 고생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면서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신 분의 후손이라는 긍지로 묵묵히 일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소원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과 국경일 경축에 관한 법률에 파리장서운동이 기록되는 것. 행정안전부 등에 여러 차례 법률 개정 민원을 제기했지만 행안부 측은 “137분의 공적은 인정하지만 법 개정에는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매번 유보적인 입장이다. 곽 회장은 “후손들의 관심이 부족해 나 혼자 동분서주하고 있다”며 “죽기 전에 나서지 않으면 90년간 묻힌 기억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아 마음만 바쁘다”고 안타까워했다.

글·사진=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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