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의 부친 영정에 잔 올리며 하염없는 눈물
“야스쿠니에 합사된 위패 돌려 주세요”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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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중국 윈난성 위시에서 열린 추도제에 참석한 유족 이희자씨가 소복을 입고 아버지 영전에 바치는 추도사를 읽고 있다. 나기천 기자 |
젖먹이 아이는 환갑을 넘긴 노인이 되어 아버지의 흔적을 좇아 머나먼 이국땅을 찾았다. 일제 징용에 끌려가 희생된 아버지에게 추석을 앞두고 술이라도 한 잔 올리기 위해서다. 잘생긴 약관 청년의 모습으로만 간직된 영정 앞에서 유족들은 제사상에 잔을 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일본이 패망하고 대한민국이 광복된 지 64년이 지났건만 유족의 상처는 그렇게 아물 수가 없었다.
지난 3일 오전 중국 남부 윈난(雲南)성 위시(玉溪)의 푸셴후(?仙湖) 앞에 제사상이 차려졌다. 고국에서 가져간 제수용품과 현지 한인 식당에서 마련한 음식이 상에 올려지고 제사가 시작됐다. 고향에 두고 온 갓난 자식과 가족 생각에 눈이 밟혔을 아버지를 추모하는 유족들의 어깨는 추도식 내내 들썩거렸다.
유족 김태선(65·여)씨는 1945년 타국에서 병사한 부친 영전에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다가 “아버지라 불러보지도 못하고….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라며 끝내 주저앉았다. 애끊는 통곡소리에 지켜보던 관계자들도 눈물을 참지 못해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돼 아버지가 징용에 끌려간 이훈(65)씨는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고 욕먹지 말라는 어머니의 교훈을 받아 열심히 살았다”고 눈물의 추도사를 읽어내려갔다. 1944년 강제 징용된 이씨의 부친은 45년 일본 패망 후 철수하던 중 중국군에 포위돼 억울하게 21살 짧은 생을 마쳤다.
이희자(66·여)씨는 45년 사망한 부친이 59년 일본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강제 합사됐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씨는 “아버지의 영혼은 아직껏 해방을 맞지 못하고 야스쿠니라는 식민지 감옥에 갇혀 있다”며 “합사자 명단에서 아버지 이름을 빼내는 데 여생을 마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씨는 현재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일본에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중국 남부지역은 조선인 군인과 군속, 노무자 등 7644명이 끌려가 전쟁에 동원돼 혹사당한 곳이다. 이번 추도식에 참석한 유족은 모두 중국 남부지역에서 희생됐거나 행방불명된 515명의 후손 중 일부다. 대부분이 죽어서 이국땅에 흔적 없이 묻혔으며 일부는 이씨처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다.
추도식은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김용봉)가 2006년부터 한일 정부 합의로 이뤄진 ‘해외 추도순례’ 사업 일환으로 마련한 것으로, 징용 희생자 유족들이 중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위원회는 윈난성에 앞서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도 1차 추모제를 가졌다. 곡창지대인 후난성은 일본군과 중국군이 3차례 대결전을 벌여 일본군 수만명이 전사한 곳이다. 김용봉 위원장은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을 생각하면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위원회는 이 분들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역사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창사·쿤밍(중국)=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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