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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동양평화론 공동체구상 유엔보다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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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3-26 13:08:21 수정 : 2010-03-26 1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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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의사 사상 재조명 활발
공용화폐 ·공동군대 등 담아… 당시로선 혁명적
“하얼빈의거는 평화운동”… 사형집행으로 미완성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지 100년째 되는 날이다.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한·중·일 학계에서는 하얼빈 의거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의 동양평화론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은 단순한 항일 투쟁이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를 실현키 위한 평화운동이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 안중근=이제 안 의사를 항일운동가로서만 바라보는 학자는 거의 없다. 안 의사가 남긴 두 저서에 대한 연구 실적이 쌓이면서 선지적인 사상가로서의 면모도 속속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안 의사가 남긴 미완성 논서 ‘동양평화론’에 관심이 집중된다. 아시아 공동체, 블록경제론과 같은 당시로선 가히 혁명적인 제안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안 의사는 1910년 3월 집필한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 삼국이 공용 화폐를 발행하고 공동 군대를 창설하는 등 공동체를 결성해 영구한 평화와 행복을 얻자고 제안했다.

김형목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하얼빈 의거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동양평화론은 한국 독립과 동양평화 유지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라며 “동양 3국간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인식론은 시대를 앞선 선각자로서 면모를 엿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사가와 노리가쓰 일본 메이지대 교수는 최근 한 국제학술회의에서 “군사·재정 통합을 포함한 지역공동체 구상은 오늘날 EU와 비슷한 개념으로 유엔보다 10년 앞선 발상”이라고 감탄했다.

◆하얼빈 의거는 평화운동의 연장선?=하얼빈 거사 직후 안 의사의 형장 최후 발언은 “나의 거사는 동양평화를 위하여 결행한 것이므로 임석 제원들도 앞으로 한일 화합에 힘써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였다. ‘동양평화론’의 내용과 재판 과정에서의 일련의 발언을 놓고 일부 학자는 의거 또한 동양평화론의 연장선에서 본다.

“안중근 의거는 만주지역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일제 침략으로부터 한국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결행한 국제적 대사건”이라고 본 장석흥 국민대 교수 등이 이 같은 시각을 갖고 있다. 사사가와 교수도 마찬가지.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핵심 동기는 동양평화에 있다고 본다. 일제의 국권침탈을 통한 ‘대동아공영권’은 평화의 약탈과 다름없다고 안 의사는 규정했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25일 오전 안 의사의 의거 장소인 하얼빈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이 주관하고 박선영 의원(자유선진당)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주최하는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그 사상과 현대적 의미’ 국제심포지엄에서 조광 고려대 교수는 ‘안중근 연구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그동안 산발적으로 간행된 안중근 자료를 집대성한 ‘안중근 전집’을 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개별 연구자 혹은 기관별로 적지 않은 안중근 자료가 간행·축적되기는 했지만, 이런 자료 외에도 새로운 안중근 기록을 덧붙여 권위 있는 기관이 주축이 되어 종합적인 안중근 전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양평화론’ 등 연구의 기초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또 지금까지 ‘위인’ 혹은 ‘영웅’이라는 개인적인 측면에서만 부각된 측면이 강하지만, 안중근이라는 개인을 통해 당시의 사회와 국제관계 그리고 반제국주의 운동이 더 잘 이해될 수 있으므로 이런 시각에 입각한 연구가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양평화론은=안 의사의 동양평화 실현을 위한 제안 논서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뒤 1910년 2월 일제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고 3월 중순 뤼순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애초 서(序), 전감(前鑑), 현상(現狀), 복선(伏線), 문답(問答) 등 5장으로 기획됐다. 안 의사는 ‘동양평화론’ 집필에 약 한 달이 소요된다는 생각에 재판부에 공소권을 청구해 그 기간에 집필을 마치려 했다.

이에 일제 고등법원장은 저서가 완성될 때까지 사형집행일을 연기해주겠다고 약속해 안 의사는 공소권 청구를 포기했다. 하지만 일제는 안 의사가 서와 전감을 쓴 직후인 1910년 3월 36일 형을 집행했고 이에 따라 ‘동양평화론’은 미완성이 되고 말았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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