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1박2일 합숙 심층면접으로 잠재력 측정
경희대, 현직 고교교사 참여 교육현장 목소리 반영
성균관대, 서류평가 3심제 도입… 공정·신뢰성 확보
올해로 도입 4년째를 맞은 입학사정관제는 서류 위조, 대필 의혹, 사정관의 전문성 부족 문제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탓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를 두고 국내 입시제도와 교육과정에 어울리지 않는 제도를 도입하기엔 시기상조라거나 제도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졸속 도입하는 과정에서 예견된 부작용들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에도 학교 자체적으로 다양한 인재 검증 시스템을 개발해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선발 후 학생 관리를 위한 노력으로 입학사정관제를 연착륙시킨 곳들도 적지 않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주관으로 지난 9일부터 사흘간 제주 라마다 프라자 호텔에서 열린 ‘2011년 대학 입학사정관제 사례 발표 워크숍’에서 입학사정관제 도입에 따른 성과 사례를 소개한 대학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워크숍에 참석한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사례 발표를 경청하는 모습. 대교협 제공 |
1박2일간 합숙을 통한 심층 면접은 입사 시험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학 입시에서도 합숙을 통해 다양하고 심층적인 면접을 하는 곳이 있다. 건국대 입학사정관 자기추천 전형이 바로 그런 사례다. 집단 면접, 발표 면접 등 다양한 각도에서 학생의 역량과 잠재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10월 경기 용인 현대인재개발원에서 합숙평가에 참여한 지원자들은 “합격, 불합격의 결과를 떠나 많은 것을 배운 기회”였다고 입을 모았으며, 학교 측도 “점수 아닌 소질과 잠재력을 측정할 수 있는 기회”라고 자평했다.
2007년 시범대학에 선정된 이래 2009년부터는 입학사정관제 선도대학에 선정된 건국대는 1박2일 합숙뿐 아니라 이름에 걸맞게 입학사정관 전형을 ‘선도’하는 각종 정책들을 도입했다.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서류와 면접 과정에서 다단계 평가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전공 적합 전형은 1단계 서류평가에서 3배수로 선발한 뒤 2단계 면접을 통해 선발했지만 올해부턴 3단계 전형을 도입했다. 1단계에서 학생부 성적으로 선발 인원의 6배수를 선발한 뒤 2, 3단계에서 서류평가와 심층면접을 통해 선발키로 했다.
사정관 1인당 250여개의 서류를 평가하게 해 한 사람이 과도한 서류를 부담해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 미국의 입학사정관 협의체(NACAC)가 책정한 사정관 1인당 적정 평가인원(서류 수)는 400∼500명이다. 미국보다 더 세밀하고 공정한 심사가 가능한 수준인 셈이다.
또 면접 문항을 만들 때에도 외부와의 접촉을 막기 위해 사정관들이 합숙을 통해 출제했으며 입학전형의 이해관계자를 전형에서 사전에 배제하는 ‘회피 제도’를 도입해 전형 관리와 시행의 공정성을 기하고자 했다.
그 결과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전공에 대한 만족도는 물론 학교 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다른 전형에 비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휴학률과 전과율, 자퇴율 등이 타전형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 학내 적응에서도 높은 수준을 보였다. 자신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인식하는 비율도 높게 나타났으며 전문성, 인성, 사회성 역량도 우수하게 나타났다.
◇지난 9일부터 3일 동안 열린 ‘2011년 대학입학사정관제 사례발표 워크숍’ 개회식에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성태제 사무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교협 제공 |
“고교 현장을 잘 아는 현장 전문가가 하는 평가만큼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은 없다.”
경희대는 현직 교사와 장학사를 ‘교사위촉사정관(입학사정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입학사정관 전형 평가에 참여시켰다. 경희대는 현직 교사와 장학사가 직접 학생을 평가함으로써 학생 선발과정의 타당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고교와 대학이 실질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판단에서 이들의 규모와 입시 참여 비중을 매년 늘리고 있다.
2007년 현직 교사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대학입학전형개발 TF가 입학사정관 전형 계획 수립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엔 현직교사와 장학사, 전직교장, 퇴임교수 등 위촉(교외)사정관 98명이 임명돼 평가에 참여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현직교사 103명과 장학사 2명이 위촉돼 정시 기회균형선발전형에서 총 486명의 서류평가에 참여했다. 이들은 전임사정관, 교수 위촉사정관과 함께 5인 1조로 평가에 참여했으며 이 중에서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3명의 평균 점수가 학생의 평가 점수로 반영됐다.
또 지난해 수시모집에서 ‘네오르네상스--예비인재발굴전형’의 사전 평가위원으로 참여해 해당 지역의 고교에서 예비발굴 인재로 추천된 학생 476명에 대한 현장 면접도 진행했다.
이들은 학생들에 대한 평가에 앞서 4∼6월 지역별로 입학사정자문위원 간담회를 열어 이 대학의 입학전형과 정책에 대해 토론·검토하는가 하면 학생부와 서류 평가방법에 대한 ‘모의평가’도 연간 두 차례씩 받았다. 이를 통해 고교 교육과정과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입시정책을 수립할 수 있고, 학생 평가의 전문성도 높일 수 있다고 대학은 보고 있다.
경희대는 “현직 교사와 장학사의 참여가 객관적인 평가에 도움이 되고 입학사정관제가 고교에서의 진학지도는 물론 교육과정과 실질적으로 연계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한국형 입학사정관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앞으로도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균관대 “선발부터 관리까지 책임진다”
성균관대는 전형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소개했다. 먼저 ‘다수-다단계 평가’란 원칙으로 서류평가에 3심제를 도입했다. 전임·위촉사정관 2명이 전형유형, 모집단위별로 교차 평가하는 1심을 거쳐 2심에선 선임 사정관 2인 이상이 협의한 뒤 전형에 따른 분과위원회를 열고 1심 결과를 심의·검토한다. 3심은 담당 전임 사정관, 분과별 대표 위촉사정관(교수), 입학사정관실장, 입학처장 등으로 구성된 선발위원회의 심사로, 전 단계에서의 심의 내용을 검토하고 서류평가 최종 합격자를 결정한다. 또 그동안의 심사과정과 결과에 따른 자체감사도 뒤따른다.
입학사정관 등 전형에 참여하는 교직원의 자녀가 지원할 때 해당 교직원은 평가에서 자동으로 제외되는 회피(상피)제도도 운영 중이다. 성균관대는 “평가위원이 되면 본인과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이 학교에 지원할 때 입학 관련 업무에서 제외시킨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하게 했다”고 전했다. 선발 과정에서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노력만큼이나 선발 후의 관리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얼마 전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 사건처럼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입학한 뒤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다. 다양한 유형의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생이 대학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사전교육을 해주는 ‘얼리버드(Early Bird) 프로그램’과 학업 능력이 낮은 학생의 수학능력을 보완하기 위한 ‘위드 유(With U)’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과 교육을 연계시키고자 했다. ‘끼’를 지닌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생을 위한 창의력 개발프로그램인 ‘창조스쿨’과 대학생활 첫해에 적응하기 위한 학문을 탐색하고 핵심 역량 강화를 위한 ‘FYE(First Year Experience)’ 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성균관대는 입학사정관이 직접 학생을 면담한 내용과 사례를 담은 ‘입학사정관, 합격생을 이야기하다’란 책자를 발간해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태영 기자 wooa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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