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태하 교수,"문호 임어당도 동이족 창제 인정"
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는 중국 은나라때 갑골문자 등을 근거로 한자는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학설을 펴고 있다. |
이어진 질문응답 시간. 대만 행정원 문화건설위원회에서 참석한 척동흔(戚桐欣)은 "강희자전체의 정자체를 쓰고 있는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여러차례 언급했다.
이 때 한 젊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친 어투로 진 교수를 몰아붙였다. "동이족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논문을 읽었는데, 한국이 한자까지 뺏어가려고 하느냐?”
그러자 진 교수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중국 학자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당장 나가라”는 격한 표현도 터져나왔다. 결국 젊은이는 분위기에 눌려 스스로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한자를 한(漢)족이 아니라 동이(東夷)족이 만들었다는 진 교수의 학설이 중국 학자들 사이에서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진 교수는 갑골문 분석과 중국 사학자 쩌우쥔멍(鄒君孟), 왕위저(王玉哲),장원(張文)과 쑨펑(孫鵬) 창힐문화연구회장, 대만의 문자학자 이경재(李敬齋)의 논문 등을 들어 동이족이 한자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세계적인 중국의 문호 린위탕(林語堂·1895~1976년)도 한자를 동이족이 만들었음을 인정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인 안호상(1902~99년) 박사가 린위탕을 만나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국까지 문제가 많다”고 하자 “그게 무슨 말이오?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아직 모른단 말입니까”라고 얘기했다는 것.
진 교수는 동이족에 대해서도 “중국 후한시대 편찬된 설문해자(說文解字)을 보면 이(夷)자를 ‘동방의 사람’이라고 했지 동쪽 오랑캐라고 비하하는 뜻은 전혀 없다”며 “우리가 스스로 동쪽 오랑캐라고 비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한자는 결코 중국만의 문자가 아니며 한자문화권 내 공유의 문자”라면서 “한글과 한자의 장점만을 취해 쓴다면 우리나라는 문자활용의 이상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준 기자 july1st@segye.com
<한자를 동이족이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근거 학설>
▷중국 倉힐(吉+頁) 문화연구회 쑨펑(孫鵬) 회장 “(한자를 처음 만든)창일은 동이족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는 한서 예기 오제편에도 논증이 있다. 동이가 문자를 창조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의 사학자 쩌우쥔멍(鄒君孟), “중국 민족, 곧 화하족(華夏族)은 원시사회 말기 炎帝((염제)와 皇帝(황제) 집단을 기초로 하여 동방일부의 蚩尤(치우)와 少昊(소호)가 지배하던 집단이 융합해 형성됐다.”(華夏族起源考論에서)
**동이: 후한시대 동방쪽 사람을 가르키는 말로 쓰였으며 활을 잘 쏘는 우리 민족의 조상을 일컬음.
▷중국의 사학자 왕위저(王玉哲), “한자의 연원은 ‘大汶口文化時代’(대문구문화시대)로 소급된다.”(‘中華遠古史’에서)
**대문구문화: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 기원전 4300년에서 기원전 2500년 무렵에 나타난 신석기시대 후기 문화.
▷중국의 사학자 장원(張文), “‘대문구문화는 동이 소호족 문화의 유존으로서 ‘양저문화(良渚文化)’의 영향을 받아 뒤에 ‘龍山文化’로 발전해 마침내 ‘갑골문자'(甲骨文字)를 만들어 냈다”(‘大汶口文化陶尊符號試解’에서)
*仰韶 앙소문화:중국 황허 중류 지역에서 기원전 5000년에서 기원전 3000년 무렵까지 존속한 신석기 문화
*용산문화 :중국의 황허 유역에서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 무렵까지 존재한 신석기시대 후기 문화
▷대만의 문자학자 이경재(李敬齋), “동이족의 대표적인 인물은 순과 설(契)을 들 수 있으며, 한자를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 ‘창연’은 ‘契’과 동일인물이며, 중국 문자는 동이인(東夷人)이 창조하였으며, 공자도 동이족인 은나라 사람의 후예이며, 공자의 고향인 곡부는 곧 소호의 옛 도시로서 동이문화의 발원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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