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다고 찬밥” 눈물
“돈 많고 힘 있는 동네가 아니라서 그런가요.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데 구청은 관심도 없더라고요….”
수마가 할퀴고 갔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구호가 끊긴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2일 자원봉사자들이 배수로를 막고 있는 토사를 삽으로 퍼내고 있다. 남제현 기자 |
지난주 서초구 우면산 일대를 할퀴고 간 ‘수마’는 구룡마을도 비켜가지 않았다. 대모산에서 밀려온 토사와 흙탕물로 전체 1200여 가구 중 500여 가구가 침수되거나 무너졌다. 무허가 판자촌인 탓에 하수구 시설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다른 지역보다 침수 피해가 컸다. 집집마다 판자 지붕 위에 덮인 천조각들은 곰팡이가 슬었고, 물에 젖어 못 쓰게 된 장롱과 냉장고 등 가재도구가 나뒹굴었다. 비좁은 골목 사이사이 자리한 집들은 음습했다. 대낮인데도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두운 집안의 장판에선 물이 베어 나왔다. 이순연(84·여)씨 집은 마루바닥이 무너지면서 마루 아래로 도랑이 흐르는 게 보였다. 이씨는 이날 무너진 마루를 지나다 발을 다쳐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이씨의 딸 조모(50·여)씨는 “주말에 주자원봉사자들이 많이 도와줬는데 일요일에 또 비가와서 물이 다시 넘쳤다. 이번 비는 감당이 안된다”며 울먹거렸다. 집이 물에 잠겼던 최영임(64·여)씨는 감전 위험 탓에 일주일 만인 이날에야 가재도구를 정리했다.
서초구 형촌마을이나 방배동 아파트단지, 강남구 대치동 등 인근 수해현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는 공무원이나 경찰, 군인 등을 찾을 수 없었다. 구룡마을이 복구작업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방송인 김제동씨가 트위터로 사람을 모아 지난달 30일 300여명이 다녀가는 등 전날까지 총 450여명이 봉사활동을 벌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무너진 축대를 세우고 토사를 치우면서 동네는 대부분 안정을 되찾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집들은 여전히 많았다.
이날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단 2명 뿐이었다. 지난주에 이어 다시 구룡마을에 자원봉사를 하러 온 김성한 숙명여대 교수는 “이곳은 복구 인력이 많이 모자란다. 중장비 지원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같이 봉사활동을 하던 이성재(42)씨도 “언론에서 우면산 근처 동네들만 나와서 여기까지 피해가 있는 줄 몰랐다. 직접 와보니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 이모(53·여)씨는 “각자 집은 그렇다쳐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큰길이나 배수로 공사라도 해주면 좋겠다. 또 비가 온다는데 배수로가 또 막히면 동네에 물이 차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소연했다.
강남구는 이날 구청직원과 용역 등 310여명을 대치동 상가등 관내 수해복구 현장에 투입했다. 지난달 31일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마을을 방문해 “빠른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날 구룡마을에서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는 공무원은 없었다. 수해복구 인력 지원을 담당하는 과에서는 “구룡마을은 개발 문제로 마을 상황실에 구청인원 20여명이 상주하고 있기때문에 따로 복구 인력을 투입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구룡마을 상황실에서는 “상황실에 있는 직원들이 나가서 임시대피소를 설치하고 구호물품과 모래, 시멘트 등을 지원하는 등 응급복구를 했다. 여기는 물이 들어와도 금방 빠져서 대부분 복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30일에 서울시 공무원 120명, 군인 40여명을 배치하려했으나 김제동씨가 수백명의 자원봉사자와 온다고 해서 좁은 마을에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니까 침수피해가 큰 곳에 인력을 변경배치한 것”이라며 “무너진 집안 복구는 무허가 건축물이기 때문에 해줄 수 없다”고 해명했다.
서초구도 고급 주택가 지역 복구에만 신경쓰고 비닐하우스 가옥 등 빈민촌 피해지역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고급 전원주택 200여 가구가 있는 방배동 전원마을 윗쪽의 무허가 주택 10여동은 폭격을 맞은 것같이 처참한 몰골 그대로였다. 방배동 전원마을의 한 무허가 주택 주민은 “공무원들이 아래 (고급)주택을 복구한 뒤 우리에게도 올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가 지난달 31일 여당 유력 정치인의 요청을 받자 구청의 태도가 달라졌다. 한 주민은 “그 사람이 아니면 (구청에서) 거들떠 보기라도 했겠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김유나·조병욱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