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판결’ 사례 살펴보니 법원의 판결이 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법 조항만을 앞세우는 경향이 강해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키우고 있다. 또 장애인 시설에서 심각한 인권유린이 자행돼도 범죄자의 봉사경력을 감안해주는 ‘온정주의적’ 판결 탓에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한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3일 세계일보가 입수한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장애인 성폭력 판결 흐름과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재판 261건에서 무죄가 선고된 47건(공소기각 8건)은 재판부가 주변 정황을 고려하지 않고 법 조항만을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장애인인 피해자에게 논리적이고 일관된 진술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범죄 사실을 재구성하면서 지적장애인 피해자에게도 논리적 완결성을 요구했다. 특히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6조의 ‘항거불능’ 조항을 지나치게 좁게 적용한 사례가 많았다. 장애인의 일상생활 능력, 학력 등을 근거로 가해자의 성관계 요구에 동의한 것으로 보거나, 과거 성경험이나 성 관계에 대한 지식을 성적 방어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도 있었다.
연구를 수행한 김정혜 전 공감 객원연구원은 “성폭력 특례법 6조는 취약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장애인 피해자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항거불능 조항을 엄격하게 따지다 보면 오히려 반대 결과가 나올 여지가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대법원에서 항거불능을 종합적으로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판례를 변경하지 않아 이후에도 하급심의 항거불능 해석 경향이 오락가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법원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잣대도 비장애인과 큰 차이가 없었다. 법원은 ▲범행의 개연성 ▲경험칙에 부합 ▲피해자 행동이 합리적일 것을 요구했다. 피해자의 진술 ‘하나하나’가 모두 개연성 있게 연결돼야 한다는 논리다. 지적 능력이 미약하고 인과관계 개념이 명확지 않은 장애인이 논리적 완결성을 추구하는 법정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밖에 없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
장애인 인권침해와 관련해 취재팀이 분석한 10건의 사건에서도 법원의 온정주의적 판단은 양형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무차별 폭행 등 장애인을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장애인 시설 관리자에게 “그동안 장애인을 위해 봉사했다”는 근거를 들어 처벌 수위를 낮췄다.
김재철 변호사는 “봉사한 기간 자체가 횡령과 성폭행, 인권침해가 이뤄진 기간일 수도 있는데 이를 이유로 감형한다면 오히려 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며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봉사 시설·재단은 더 엄격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태영·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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