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났다. 방학 동안 밤새 인터넷 게임을 하다가 오전 내내 늦잠을 자는 자녀와 신경전을 벌였던 학부모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당신의 자녀가 인터넷 게임에 중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중독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중학생이 부모와 갈등을 겪다가 자살하거나, 게임 중 채팅창에서 욕설을 주고받던 초등학생 20명이 직접 만나 난투극을 벌이는 등이 인터넷 게임으로 인한 사건들이 몇 년 전부터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 학교폭력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2006년 방영된 EBS 특집 드라마 ‘클릭 안전짱’의 한 장면.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주인공 어린이가 어두운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다 |
◆우울증부터 정신분열증까지… 인터넷 게임 중독 증상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들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증상을 보인다. 가상공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등 자기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 경우 게임이 폭력적일수록 폭력성과 공격성이 현실에서 두드러진다. 인터넷상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집중력 있게 게임하는 아이들도 현실에서는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성격장애, 사회공포증을 앓을 수 있다. 또 게임이나 인터넷을 못하게 하면 우울증을 보이거나 초조함과 불안감을 느끼는 ‘금단증상’도 동반한다.
이러한 인터넷 게임 중독의 특징은 중독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초기에는 가상공간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가상의 대인관계를 지향하면서 약간의 우울증세를 보인다. 조금 더 심해지면 일상생활 장애와 일탈행동으로 발달하고 중독이 심해지면 금단현상이나 현실구분장애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돼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김상은 교수는 인터넷 게임 과다 사용자들에게서 도파민성 신경망이 지나치게 활성화된 것을 확인했다. 도파민은 감정, 동기부여, 욕망과 관련이 있는 물질로 도파민의 불균형은 정신분열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은 게임 자체에도 원인이 있지만 가정과 학교 환경 등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원인의 상당부분은 가족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부부의 갈등을 자주 목격하는 아이, 부모의 방임적 혹은 권위주의적 양육방식에 노출된 아이들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게임을 돌파구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또 가상공간에서 대인관계를 형성하려는 경향, 거기에 더욱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더 쉽다.
학교환경도 중요하다. 인터넷을 활용한 학습이 늘어나면서 학생들은 인터넷 공간과 게임을 통한 또래문화를 형성할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건전한 사용방법 및 중독 예방교육은 그에 못 미쳐 인터넷 게임 중독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06년 방영된 EBS 특집 드라마 ‘클릭 안전짱’의 한 장면.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주인공 어린이가 어두운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다 |
아이의 인터넷 중독을 예방하고 싶다면 정기적으로 인터넷 중독 검사를 실시해볼 필요가 있다. 보통 학교에서 진단을 해주겠지만 집에서 해볼 수도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대응센터(www.iapc.or.kr) 홈페이지에서는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과 더불어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자가진단까지 가능하다.
아이가 인터넷 게임에 푹 빠지기 전에 바람직한 사용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에게 무조건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와 갈등이 심해지거나 몰래 피시방에 다니면서 중독될 가능성이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터넷 게임과 관련된 생활규칙을 만들어 아이 스스로 지키게 하는 것이다.
신라대학교 유영달 교수는 ▲게임은 하루 1시간30분 이내로 ▲잠은 정해진 시간에 ▲주 2회 이상 운동 등 원칙을 제시한다. 이런 원칙을 세워놓고 지킨다면 아이들은 건전한 인터넷 생활을 익히는 동시에 몸도 인간관계도 건강히 가꿀 수 있다.
하지만 의지가 약한 아이들은 스스로 규칙을 지키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정부에서 운영하는 규제 제도의 도움을 받아보자. ‘게임시간선택제’는 부모의 요청에 따라 온라인게임 서비스 시간을 일부 제한하는 제도다.
먼저 홈페이지(www.gamechek.org)에서 자녀가 어떤 게임을 이용하는지 조회해본다. 확인 뒤 일부 게임의 시간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해당 기업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제한하고자 하는 게임의 종류와 시간을 선택한다. 이렇게 하면 정해놓은 시간을 초과해 게임을 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 역시 부모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보다는 자녀와 함께 ‘약속’하고 신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
이미 인터넷 게임에 심각하게 빠진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청소년 문제와 마찬가지로 학교와 가정의 협력이 중요하다. 중독 증상이 의심된다면 학교 상담교사나 외부기관의 도움으로 중독 정도를 진단하고 잘못된 인터넷 이용 습관을 고쳐나갈 수 있다. 이마저 효과가 없는 상황이라면 전문기관을 찾아 치료받기를 권한다. 한국청소년상담원(www.kyci.or.kr)에서는 무료로 가족치유캠프를 운영한다.
학생과 부모가 함께 인터넷 게임보다 소중한 ‘소통’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게임 중독 치료뿐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생활태도까지 함양할 수 있을 것이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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