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서 회수해놔도 보건소선 제때 안 가져가 “남는 약요?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따로 처리해야 하나요?”
29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있는 종합병원 앞 대형약국. 이곳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봉지 가득 약을 들고 나서다가 “집에서 먹다 남은 약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냥 버린다”고 말했다. 약국을 찾는 다른 환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먹다 남은 의약품을 약국 또는 보건소에 배출토록 하는 ‘가정 내 불용의약품 안전관리 사업’이 시행 4년째를 맞고 있지만 홍보와 인식 부족으로 겉돌고 있다.
하지만 세계일보 취재팀이 서울시내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인근 약국 등을 확인한 결과 폐의약품이 제대로 수거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약사 정모(58)씨는 “폐의약품을 약국으로 가져오는 사람은 한 달에 세 명도 안 된다”면서 “홍보가 안돼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다 약국에서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전국에서 수거된 폐의약품 양은 372t으로, 사업이 첫 시행된 2010년 227t에 비해 140t 정도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당국은 현재 가정에서 버려지는 의약품 수거량은 실제 발생량의 10∼20%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효능은 같지만 성분이 다른 의약품의 중복처방으로 처방전을 두 차례 이상 발급받은 건수는 390만건으로 달했다. 이로 인해 버려지는 약값 규모가 무려 260억원으로 추산됐다. 여기에다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과 건강보조식품까지 합치면 가정에서 버려지는 의약품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국은 정확한 폐의약품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수거된 폐의약품 처리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서울에 있는 4921개 약국 중 99.3%(4885개)가 폐의약품 수거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지만 보건소에서 제때 가져가지 않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 종로5가에 있는 한 대형약국에는 수거된 폐의약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담당자는 “약국에 폐의약품 보관창고가 별도로 없어 보관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보건소에서 제때 수거해 가지 않아 6개월 넘게 모아두고만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폐의약품 수거함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비치하고 복약 지도 때 안내하거나 약봉투 등에 폐의약품 처리 문구를 넣는 방법 등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폐의약품 수거를 법제화하는 등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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