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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누렁이 살리니 고향도 살아납디다”

입력 : 2009-01-22 17:14:03 수정 : 2009-01-22 17: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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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월 다하누촌 촌장 최계경씨 고향서 부른 희망가
설날이 코앞이다. 설 무렵 고향은 굳이 가지 않아도 이미 기억의 유전자 깊이 각인돼 있다. 설이 고향 이미지와 결합되면 아름다운 그림이 먼저 떠오른다. 을씨년스런 겨울의 한복판이지만 고향을 지키는 부모와 ‘어르신들’ 덕택에 설날은 유독 따뜻해진다. 고향을 찾은 동네 청년들 덕택에 희망이 담금질되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사람살이도 바뀌었다. 명절의 의미는 퇴색했고 고향의 포근함도 예전 같지 않다. 허나 생활이 각박하고 삶의 주름이 늘수록 고향은 그립다. 명절 무렵의 고향은 이 느낌이 더하다.

소띠인 기축년 고향의 정이 느껴지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곳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근면’과 ‘의’(義), ‘부’를 상징하는 가축 ‘소’와 고향이 결합된 곳을 찾기로 했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섶다리. 이곳에는 ‘다 한우만 파는’ 다하누촌이 있다. 한우가 아닌 것을 한우라고 우겨 섞어 파는 곳들과 비교하기 위해서 지은 이름이다. 미국산과 호주산 등이 넘치는 와중에 온전히 우리 누렁이를 찾는 이들만 존재하는 곳이다.

#‘한우’가 알린 고향 마을

마을 브랜드이기도 한 다하누촌의 최계경(46) 촌장. 그가 고향인 주천면에 다하누촌을 연 것은 2007년 8월이었다.

“농촌이 어렵다고 하는데, 민족과 같이 5000년을 살아온 한우가 설 자리를 잃은 것도 한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육류 최고 음식인 한우로 고향마을에 기를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유통 단계를 줄이고 판로를 트면 한우도 살리고 고향도 살아날 것이라 기대한 것이지요.”

최 촌장은 삼겹살 수준의 가격으로 구입한 한우 1등급 고기를 근처 식당으로 가서 직접 구워먹게 했다. 믿을 수 있고 맛있지만 비싼 고기라는 인식은 다하누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1인당 상차림 비용도 2500원으로 저렴해 가족단위 손님들이 다하누촌을 찾았다. 그의 새로운 시도는 보기 좋게 성공했다. 16개월 만에 섶다리에서 다하누촌 브랜드를 내건 정육점은 11개, 식당은 48개로 늘었다. 가맹점주 중에는 외지인도 제법 있다. 강원 홍천군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던 김상현 사장은 ‘동강점’을 냈고, 서울에서 온 연정석 사장은 ‘주천가든점’을 열었다. 하루 매출 5만원이 안 되던 식당의 매출액은 30만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인구가 느는 유일한 농촌일 겁니다.”

주천면사무소 소재지 마을은 인구 400명이었지만 1000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다수 주민은 30∼40대 젊은 층이다. 주말 평균 6000명 등 14개월 동안 방문한 외지인이 160만명을 넘어섰다. 다하누촌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쓰러져 가던 빈집과 파리 날리던 가게들이 정돈되고 있다. 식당들을 한우불고기와 숯불구이에 이어 곱창전골, 육초밥, 내장탕 등으로 전문화하는 작업도 펼쳐진다.

“우리 농촌에서 인구가 느는 곳은 이곳밖에 없을 겁니다. 빈 집이 많았는데, 이제는 살 집이 없어서 아파트와 빌라도 들어서야 한다고들 해요.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고향의 명품으로 가게를 열면서 어른들도 모시니 좋은 일이지요.”

최 촌장은 고향인 영월과 서울을 오가며 고향 마을 살리기에 한껏 힘을 쏟고 있다. 그와 함께 주천강의 쌍섶다리를 찾았다. 주천강을 찾으면 양반에게는 약주가, 상민에게는 탁주가 솟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쌍섶다리는 부임하는 강원관찰사 일행이 장릉(단종의 능) 참배 길에 건넜다고 한다.

최 촌장이 주마을 주민과 함께 4인 가마가 건넜던 두 다리를 300년 만에 복원한 것은 2003년 12월이었다. 주천강에 옛 방식대로 나무를 엮고 흙을 덮어 다리를 놓았다. 섶다리 복원이 주목받자 그는 다양한 축제로 영월 알리기에 나섰다. ‘섶다리 감자꽃 축제’와 ‘섶다리 사진 공모전’, ‘꼴두국수 축제’ 등이 그것이다. 이런 행사는 외지인에게 영월을 알린 동시에, 타향에 살던 영월 출향민에게도 자부심의 든든한 배경이 됐다.

다하누촌의 성공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영월군청의 적극적인 홍보와 관리도 큰 힘이 됐다. 주말이면 공무원들이 현장을 찾아 주민의 애로사항을 청취했고, 관광객의 민원을 해결했다. 영월의 주요 관광지와 다하누촌을 이어주는 여행 프로그램을 성사시키며 이곳을 알렸다. 다하누촌의 성공은 관과 민이 힘을 합해 이룩한 소중한 성과라는 게 최 촌장의 평가다.

#가보고 싶은 관광지가 아닌 살고 싶은 고향으로

최 촌장이 육류 분야에 뛰어든 것은 벌써 4반세기가 넘는다. 고향의 주천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던 1983년 서울 독산동에서 정육점을 열면서부터다. 친구들이 직장에 다닐 때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최 촌장은 1990년 자신의 이름을 딴 돼지고기 전문점 ‘계경목장’을 열었다.

계경목장과 다하누촌의 성공을 바탕으로 고향마을 알리기 작업에도 본격 나섰다.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동요 ‘송아지’를 쓰고 있는 한우 전도사이지만 고향마을 전도사이기도 한 셈이다.

“관광객이 넘치는 것도 좋지만 고향 선후배들이 재미나게 살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좋지요. 이번 설에도 고등학교 동창 셋이서 만나기로 했는데, 모두 다하누촌으로 내려와서 살 생각을 하고 있어요.

주천면에 땅을 사서 감자와 콩을 경작한 것도 고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한우를 문화와 접목시키는 일도 추진할 생각이다.

“‘불고기는 한우로 만들어야 제 맛’이란 인식이 뿌리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한우 수요가 늘어나는 동시에 우리 문화 홍보도 잘 이뤄지겠지요. 제가 한우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한우전문대학 설립을 적극 고려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영월=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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