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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로 순수예술 찬바람
문화생활 통해 삶의 질 높여야
독일의 미학자 발터 베냐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는 진본만이 가질 수 있는 권위와 신비한 느낌의 아우라가 없다”고 말했다. 베냐민이 아우라가 사라진 기술복제시대 예술인 사진이나 영화 예술을 부정적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시대 현대인이 클래식보다는 가벼운 대중예술과 더 자주 접촉하게 되는 것은 균형을 잃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산모의 심장박동을 들으면서 태아가 안정을 취하는 것처럼 클래식 음악은 아이에게 심리적 안정을 준다고 한다. 그만큼 클래식은 예술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힐링 요소까지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과 젊은이는 클래식은 멀리하고 힙합이나 K-팝 등 대중음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같은 가격대라도 뮤지컬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지만 오페라 공연에는 관객이 몰리지 않는다. 대중음악에 기우는 관심과 향유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클래식 연주가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가면서 클래식 공연문화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 문제다.

미술계도 디자인 분야는 활성화되고 있지만 순수예술은 경기침체에 따라 점차 활로가 막혀 활기를 잃어 가고 있다. 좋은 작품의 전시도 관람객을 만나지 못하고 보람 없이 전시장 문을 다시 나서고 있다. 전업작가는 미술학원으로 생계를 꾸리는 등 이 시대는 전업작가로 살아가기가 힘겨운 시기다.

영화계도 웰메이드보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영화가 대중의 인기를 끈다. 좋은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주문에 얘기해 주면 그런 영화가 개봉했느냐고 묻기 일쑤다. 물론 예술전용관을 찾아다니면서 좋은 영화를 찾아보는 관객도 있지만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관람문화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독서계에서도 품격 있는 스테디셀러보다는 당장 생활에 필요한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고 있다. 출판시장은 점점 얼어붙어 좋은 책보다는 팔리는 책만 출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학 교육에서 고전 읽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학생은 오로지 과제를 위해서만 읽을 뿐 고전의 깊이를 깨달아 삶의 지혜로 삼으려 하지는 않고 오로지 취업을 목표로 스펙 쌓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산업자본주의의 가치관이 우리 문화 풍토를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예술에서도 ‘돈이 곧 생명’이 돼버린 천민자본주의가 임계점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외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교육 관련 커리큘럼이 잘돼 있고 체험학습도 많이 하기 때문에 음악, 미술, 문학, 영화 등 예술 전반에서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또 많은 사람이 여전히 클래식 공연 문화를 즐긴다. 내가 만난 외국인은 영화인이 아닌 데도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좋은 영화를 잘 알고 있었으며 좋은 영화는 대부분 봤다는 데에 놀란 적이 많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초등학교 때에는 방학과제로서 미술관을 방문하고 사생대회나 음악회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말 바람직하다. 그러나 중학교에만 올라가면 내신성적이나 고등학교에서 필요한 여러 학습에 치여 청소년이 문화생활을 누릴 여유가 없다. 그나마 자주 접하는 문화가 영화인데 엔터테인먼트용 작품만 보고 있어서 영화를 보면서 교양과 삶의 메시지를 찾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도 정작 클래식 문화를 즐기는 학생은 많지 않다.

국민소득 2만달러인 우리나라가 10만달러가 가능할까 아닐까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문화선진국이 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생활이 진정한 선진국을 만드는 밑거름이 아닐까.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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