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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일본에서 느낀 문화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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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7-06 15:12:00 수정 : 2007-07-06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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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도쿄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어 주말을 이용해 잠깐 다녀왔다. 두 시간 정도면 닿는 거리지만 생각하는 것부터 생활태도에 이르기까지 우리와는 어쩌면 그리 다른지….
방송하는 사람이다 보니 대중문화나 음반 쪽에 특별히 더 많은 관심을 갖는 편인데, 일단은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 됐어도 불법으로 다운받지 않고 대부분 음반을 사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는 예전에 비해 음반 판매량이 10분의 1 정도로 줄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음반을 사서 소장한다. 또한 도심지에서부터 시골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 라이브 공연 무대가 많아 꼭 유명한 가수가 아니더라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 우리와는 큰 차이다. 한국 가수들이 적극 일본으로 진출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소규모 라이브 공연 하니까 문득 생각나는 가수가 있다. 이번에 미국 무대에 처음으로 진출해 좋은 반응을 얻고 돌아온 재즈가수 나윤선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프랑스는 시골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좋아하는 가수를 초대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공연이 끝나면 민박하는 일이 많은데 밤에 마을 사람들이 직접 담근 포도주를 들고 와 그야말로 또 다른 축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그 광경을 그려만 보아도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일본도 비슷하다. 아무리 한류 한류 하지만 실은 아주 작은 소도시에 이르기까지 공연문화를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저력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 유명한 가수가 아니더라도 콘서트를 하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우리처럼 10대만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아주머니들이 그 긴 줄에 섞여 열광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문화를 소비하는 대중의 층이 한국보다는 훨씬 넓고, 깊다는 것을 느낀다.
마침 도쿄에서 오랜 친구인 화가 ‘오명희’ 개인전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일본에서 전시회를 하며 정말 놀랐던 것은 일본 화가도 아닌 한국 화가의 자그마한 전시회에 전철을 타고 먼 거리를 찾아오는 노인들이 많다는 점이라고 한다. 잘 차려입은 노인들도 있지만, 개중에는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혼자 찾아와서 진지하게 그림을 감상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가더라는 친구의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문화의 저력이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을 즐길 수 있고, 은퇴한 노인들까지도 화랑을 찾아다니는 여유로운 모습을 우리도 곧 갖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풀뿌리민주주의도 좋지만, 풀뿌리 문화국가가 되어야 삶의 질이라는 면에서 진정한 발전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일본을 능가할 요소는 참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일단 우리는 엄마들이 아이들 기를 살리는 교육을 하고 있고, 일본은 기를 죽이는 교육을 한다. 어렸을 때부터 하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강조하다 보니 어른이 되어서도 대부분 기백이 없어진다고 한다.
지식정보사회에서의 한국은 무한히 뻗어나갈 잠재력이 풍부한 디지털 왕국이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가업을 계승하는 집이 많고 정직한 면은 돋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융통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하긴 저작권 면에서는 융통성이 없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기는 하겠다.
딸아이가 우리 돈 70만원 정도를 주고 포토숍 프로그램을 사려는 일본인 친구에게 무료로 다운로드받아 주겠다고 했다가 무안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비싸도 정당하게 사고 싶다는 한마디에 머쓱해진 적이 있었다는데, 노래도 반드시 돈을 내고 다운받지, 불법으로 다운받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걸 보면 왜 가수들이 기를 쓰고 일본으로 진출하려 하는지 이해가 간다.
이숙영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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