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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행정체제 개편 公心과 公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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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3-04 22:56:08 수정 : 2009-03-04 22: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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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논리에 발목 잡힌 행정체제

경쟁력 높이려는 시대적 命題
박병헌 논설위원
정치권에서 논의 수준에 그쳐왔던 지방행정체제 개편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표적인 지방행정 개편론자로 꼽히던 이달곤 한나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 장관에 취임하면서부터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의원을 발탁한 것 자체가 행정구역 개편을 지휘하라는 복안이 담겨 있을 법하다.

현재 시도-시군구-읍면동 3층 구조로 된 지방행정 계층 수를 줄이고 230개 시군구를 통합·광역화해 지방분권을 강화하자는 게 골자다. 현행 지방행정체제에서는 인구 2만명 미만의 군과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가 똑같이 기초자치단체라는 지위를 갖고 있다. 시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법적 지위는 같다. 인구 83만명이 넘는 경기 용인시와 인구 1만9000여명인 경북 영양군의 경찰서장은 모두 총경이다. 영양군은 행정동 가운데 주민 수가 가장 많은 경남 김해시 내외동(8만8609명)에 비해 4분의 1 수준이다. 내외동 공무원은 27명이지만 영양군청은 약 500명에 달한다. 무려 18배가 넘는다. 지자체가 1개 동사무소에 비해 주민 수는 적은데도 공무원이 훨씬 많은 경우가 적지 않다. 아주 비정상적인 구조라 할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지자체별로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시군청사와 종합운동장, 문화회관을 앞다퉈 건설하고 있다. 지역민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효용성은 ‘묻지마’ 식이다. 2002년 개항한 양양국제공항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이후 이용승객이 단 한 명도 없다. 정치인이나 지자체장이 정확한 수요 예측 없이 다음 선거를 의식해 지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방공항을 건설한 결과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현상은 행정수요와 책임이 같지 않음에도 같은 지자체라는 형식적, 무조건적인 평등논리에 사로잡혀 발생한다. 지방도 각기 제 사정이 다른데도 그저 남들처럼 똑같이 좇은 결과 엄청난 예산낭비와 불합리성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이런 획일화한 형식주의는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발전의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결국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원인이 된다.

영국, 일본에 이어 프랑스도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행정력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방행정 조직 개편안을 얼마 전 내놨다. ‘광역은 보다 크게, 기초는 보다 다양하게’ 개편했다. 형식적 평등주의와 지역이기주의의 온상이 된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다.

주민 생활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직된 행정구역 등 문제가 분명히 있음을 모두가 공감한다. 이 같은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막상 각론에 들어가면 멀고도 험한 길이 된다. 정치권과 지자체는 물론 지역민의 이해가 상충돼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행정체제를 2층 구조로 바꾸려 한 적은 그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여야 간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무산됐다.

1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행정구역을 개편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대개조’를 뜻한다. 예컨대 논의 결과에 따라 충청·전라가 ‘충전도’로 묶일 수도 있고, 경상남북도가 ‘경상도’로 바뀔 수도 있다. 생활권역이 비슷한 경기 안양, 군포, 의왕시를 하나로 묶는 등 230개 지자체가 50∼70개 광역시 체제로 전환될 수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과도 맞물려 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극심한 논란은 불가피하다.

지방행정체제 개편론은 정치권에서 먼저 튀어 나왔다.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의 이해관계, 정치적인 득실을 따져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반대해선 안 될 일이다. 정치권이 먼저 개편안을 마련하고 주민에게 제시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정략적인 득실이 반영되기 십상이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이 성공하려면 정치권과 정부·지자체·학계·주민 등이 참여하는 중립기구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공심(公心)과 공안(公眼)으로 접근하고, 판단해야 할 중차대한 사안이다.

박병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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