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 다문화 접할 반가운 기회
세계화의 기본은 다양성의 존중
각국 동화책 보며 창조성 키우자
권지예 소설가 |
이제 우리나라도 국제결혼으로 인한 다문화가정이 많이 늘었다. 다문화가정에서 탄생한 어린이와 그 부모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부모 나라의 문화를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그림동화를 통해 원어와 함께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문화가정의 어린이만을 위한 것일까.
세상은 더욱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정서,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그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해주어야 진정한 글로벌 세상의 소통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다름’이나 ‘차이’가 차별과 배제의 원인이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으며, 다양성은 오히려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림동화 서비스는 그런 의미에서 어릴 때부터 다문화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주고 장래 우리 아이 세대가 다양한 세상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유아영어 학원에서 앵무새처럼 영어 몇 마디 배우는 것보다 제3세계의 그림동화책의 이야기를 보고 읽는 것이 그 아이의 언어 잠재력과 상상력, 창조성에 이루 계산할 수 없는 영향을 줄 것이다. 요컨대 문화란 우열의 문제가 아닌 다양성의 문제이며, 감수성의 개발은 어릴수록 더 유리하다. 게다가 문화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이야기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그날 행사장에서 어느 외국 작가가 한 말은 그 점에서 정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잠바 다쉬돈독이라는 이름의 그 작가는 몽골의 안데르센이라 불리는 동화작가다. 자그마한 키에 푸른색의 몽골 전통의상을 입은 그는 당당하면서도 범접하지 못할 위엄과 푸근함을 함께 지닌 사람이었다. 이 사업의 취지에 적극 공감해 저작권을 무상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초원의 먼 나라에서 온 그가 말했다. “나는 다른 나라에 가려면 여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의 동화책은 여권이 필요 없습니다.” 나는 그의 그 말에 가슴 뭉클하게 공감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고 발 없는 글이 인간의 발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다.
또한 그 문화를 즐겁고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은 어린아이일수록 더 빠르다. 한국에서 태어난 큰애가 우리 부부를 따라 프랑스에 간 것은 다섯 살 때였다. 불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이는 한동안 학교에서 벙어리로 지냈다. 그런 아이를 나는 집 근처의 어린이 도서관으로 매일 데려갔다. 프랑스에는 성인 도서관 외에 동네마다 어린이 도서관이 몇 개씩 있었다. 프랑스 엄마들은 놀이터처럼 생긴 그곳에서 아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었다. 나 또한 아이에게 그곳에서나 집에서나 그림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간단한 책은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고 내용은 물론 발음과 알파벳의 원리까지도 서서히 익히기 시작했다. 아이는 학교생활에 곧 흥미와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나는 한국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이는 예전의 경험과 감수성으로 한글을 깨달아갔다. 이것은 단지 부분적인 한 예에 불과할지 모른다. 다만 어린아이에게 이야기와 문자와 엄마의 사랑이 담긴 목소리로 전달하는 그림책이야말로 최초의 다문화교육이며 언어교육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그 역할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서비스로 한다고 하니 반갑고 기대가 크다.
권지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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