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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 칼럼] 통일 대비 ‘위기관리 매뉴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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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17 10:44:23 수정 : 2010-05-17 10: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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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된 통독 후유증 심각
반면교사 삼아 대응책 마련을
1989년 10월 26일, 당시 서독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는 서울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후 기념강연을 했다. 강연이 끝나자 어느 학생이 질문했다. “서독과 동독의 통일은 언제쯤 이루어질까요.” 브란트 총리는 즉각 답변했다. “앞으로 10년 안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서독과 동독을 막고 있었던 베를린 장벽은 그날로부터 2주 후인 11월 9일 무너졌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경영학
이 세상에서 서독과 동독의 통합 가능성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브란트 총리마저도 예상치 못했기에, 서독은 독일통일에 대비한 준비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 결과 독일은 지난 21년간 통일 과정에 1조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부었음에도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아직도 완벽한 통합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오늘에 이르렀다. 통독 당시 실질가치가 4배 이상 차이가 나는 서독과 동독 화폐를 일대일로 바꿔준 결과 시장경제에 극심한 왜곡이 일어났고, 동독에서 서독으로 물밀듯이 넘어온 300만명이 넘는 주민들에게 충분한 일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한 결과 실업률이 12%를 넘는 만성 실업 상태를 초래했다. 서독 정부는 수많은 잘못 중에서도 초등학교에서부터 자본주의 교육을 해야 한다는 사전계획을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한다. 시장경제 내에서 기업이 최적의 자원배분을 가져오고, 시간 경과에 따라 돈의 가치가 바뀐다는 기초교육을 소홀히 한 결과, 이념이 다른 두 경제체제를 통합하는 작업을 주민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통일하게 될 경우 우리는 이러한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한 준비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 그 대답은 회의적이다. 북한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작전계획과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빼놓고는 특별한 대응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휴전선은 하룻밤 사이에 거짓말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 경우 영화 해운대에서 보는 이상으로 거대한 사회적 쓰나미가 우리를 엄습할 수도 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남북통일이 갑자기 이루어져 북한 주민이 먹을 것과 일자리를 찾아 남한으로 대거 내려온다면 이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두 지역 주민들이 경제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첫째 과제는 화폐 통합인데, 교환 비율은 어느 수준이 적절한가. 남북 간에 오랜 단절로 국민건강의 조건이 달라진 상태에서 무작정 교류해도 괜찮겠는가. 남북한 주민 사이에 말이 다르고 생각이 틀린데, 이러한 언어와 철학적인 차이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전압이 서로 다른 남북한 전기는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같이 통일에 관련된 이슈를 목록으로 만든다면 그 길이는 끝이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미래에 나타날, 그리고 예측이 쉽지 않은 일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할 뿐 충분한 준비를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통일은 예측이 쉽지 않다고 해서 방관하고 있을 일이 절대로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정부는 통일에 대한 준비작업을 해두고, 이에 대한 매뉴얼을 대통령 책상 위에 올려 놓아야 한다. 통일이 이루어지는 시점에 즉각 해야 할 일, 24시간 내에 해야 할 일, 일주일 내에 해야 할 일, 한 달 내에 해야 할 일, 그리고 3개월, 1년, 3년,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로 분류해서 빈틈없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철저하고 체계적인 준비를 해놓은 경우와 이에 대한 준비가 없는 경우에서 우리가 감당하게 될 통일비용의 차이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수준이 될 것이다. 이제 정부가 통일에 대해 사전에 준비해 놓아서 남북통일이 동서독 통일과 같이 물먹는 하마가 아니라 비용보다 효과가 더 큰,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한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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