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날개는 원래 색소가 없지만 화려한 빛깔을 낸다. 생물학자는 이를 구조색(structural color)이라고 이름 붙였다. 날개를 확대하면 층층의 기하학적 나노 구조물(광결정)이 나타난다. 광결정의 배열이 변하면서 다양한 빛깔이 나오는 원리다. 빨간 장미는 문질러도 빨갛지만 나비 비늘은 무색이 되고 만다. 생화학적 색소가 없으니까 그러하다. 눈은 흰색이지만 물을 부으면 눈 구조가 깨져 무색으로 변하는 것과 같다.
고대 그리스어 난쟁이(nanos)에서 따온 나노는 매력 만점이다. 도마뱀이나 나비뿐만 아니라 조개껍데기의 내부 진주층, 공작의 깃털, 오팔 같은 보석도 나노의 원리가 빛나는 공간이다. 생물, 무생물 할 것 없이 나노 물리학이 번뜩인다.
천안함 사건 원인 분석에 나노의 힘이 컸다. 북한 어뢰의 고농축 폭약성분 HMX 462ng(나노그램)과 RDX 69ng, TNT 11ng을 찾아낸 덕이다. 1g의 10억분의 1이 1ng이니 일반세계에서는 무시해도 되는 초극미량이다. 함수와 연돌 절단 부위를 거즈로 닦아 내고 바닷속 모래더미를 뒤져 채취했으니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이 한껏 빛난다. 미국의 수중탐사·폭약 전문가조차 손사래를 쳤다지만 우리 전문가는 해냈다.
북한은 아마 남한이 나노세계에까지 자유롭게 소통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북 잠수함(정) 2척이 사건 발생 2∼3일 전에 남포 비파곶을 떠난 사실을 알았지만 어뢰 공격은 설마했듯이 말이다. ‘바닷속 모래톱의 나노!’ 공상과학 소설 제목같지만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가슴저린 남북 분단의 현실을 더욱 절감케 해주고 있는 것이다. 북이 연일 남한의 ‘날조극’이라고 읊어대지만 속절없는 짓이다. 나노는 작지만 우주만큼 거대하다.
조민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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