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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해병기 서양고지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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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4-29 21:47:14 수정 : 2012-04-29 21: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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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국제수로기구(IHO) 총회가 모나코에서 지난 23일(현지시간) 시작돼 27일 막을 내렸다. 이번 총회의 쟁점은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 4판 개정판의 동해표기와 관련된 것이었다. 한국은 ‘동해(East Sea)’를 일본해(Sea of Japan)와 병기할 것을 주장한 반면, 일본은 ‘일본해’ 지명을 개정판에서 고치는 것을 반대해 대립하면서 동해표기 문제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이로써 4판 개정판 발간에 대한 결정은 차기 총회인 2017년 으로 미뤄지게 됐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주장과는 반대로 지금보다 훨씬 이전부터 서양고지도에서 동해는 일본해와 함께 병기됐으며, 때로는 동해로 표기되기도 했다. 17세기 이전까지 서양에서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에 지도상에 양국에 관한 국토의 형상을 표기하는 것이 부정확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비해 동해 해역의 지명 발생도 늦었고, 또한 정착되지 않았기에 무표기, 중국해, 만주해, 일본해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16세기 후반 서양 고지도에 중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에는 중국해, 만주해란 명칭이 등장한다. 1568년 포르투갈의 디오고 호멘의 ‘동아시아’에는 서양인에 의해 최초로 일본해 지명이 태평양 측에 나타난다. 그리고 1602년에는 중국 북경에 체재했던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에 의해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가 제작됐는데, 동해 해역의 중앙에 일본해 지명이 최초로 기재됐다. 그러나 1615년에는 포르투갈의 고딩뉴가 제작한 ‘아시아전도’의 동해 해역에 최초로 ‘한국해(Mar Coria)’가 표기됐다. 그 후 서양 고지도에는 한국해 표기가 증가해 18세기에는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서양인에 의한 동해 해역의 탐험 결과, 서구 사회에 일본해 지명이 점차 보급되기 시작했다. 19세기까지 서양 고지도에는 동해 해역의 명칭을 병기한 사례도 다수 나타난다.

이처럼 19세기까지 서양고지도의 동해 해역에는 다양한 명칭이 표기됐고, 또한 여러 유형의 지명병기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서양에서는 동해 해역의 명칭에 대한 동일한 인식과 이해를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20세기 이전까지 서양 고지도의 동해 해역에는 지명병기 유형이 다수 발견되며, 항행의 안전과 해양명칭의 표준화를 위해 국제수로기구(IHO)가 발간한 ‘해양과 바다의 경계’ 제1판, 제2판, 제3판에도 지명병기는 다수 존재한다. 또한 2009년 조사에서 해외 지도제작사의 동해·일본해 병기 비율은 28%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가 동해·일본해 병기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증거이다.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여 더 이상 일본해 단독표기를 고집하지 않기를 바란다.

곽진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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