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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매니페스토의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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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7-22 20:33:47 수정 : 2012-07-23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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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민주 ‘정책공약의 승리’ 이젠 역풍
한국 대선후보 일본의 교훈 되새기길
다른 요인도 많겠지만, 결정적인 건 매니페스토(manifesto·정권의 정책공약)였다. 일본 집권 민주당에 54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달콤한 승리를 가져다준 것도, 3년 만에 분열과 실패를 맛보게 한 것도.

김용출 도쿄 특파원
“내부 개혁에 앞서 국민과 하지 않기로 한 증세를 먼저 강행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더구나 증세를 하면서도 우리가 정권교체 당시 약속한 각종 사회보장정책을 보류한 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다.”

지난 7월2일. ‘정계의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는 의원 40여명을 이끌고 탈당하며 이렇게 밝혔다. 속내야 알 수 없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2009년 총선 당시 민주당의 매니페스토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부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9일 후 민주당 매니페스토를 담은 책자의 구호였던 ‘국민생활이 제일’이라는 이름으로 신당을 차렸다.

당을 떠나지 않았지만, 정치적 영향력이 만만치 않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도 ‘자민당노다파’라고 극언하며 노다 정권을 안에서 흔들고 있다. 그의 비판 근거도 매니페스토다. “증세는 매니페스토 위반”이니 증세법안을 빨리 철회하라고 요구한다.

증세에 정부 여당과 손잡은 자민당과 공명당은 또 어떤가. 이들 야당은 노다 총리에게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역시 “민주당 매니페스토가 사실상 폐기됐으니 이제 정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다시 심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위기의 노다 총리에게도 할 말은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 이상인 재정적자에서 많은 재원이 드는 정책공약을 이행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소비세를 올리고 복지를 줄여 재정 적자를 최소화하려 한 것이다. 여기에 개인적인 야심도 조금.

‘분명한 의미’, ‘매우 뚜렷함’ 정도의 의미인 라틴어 ‘마니페스튬(manifestum)’에서 파생한 매니페스토를 1990년대 영국에서 도입한 일본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해 집권에 성공한 것은 민주당이었다. 2009년 총선에서 54년 만에 자민당 정권을 무너뜨린다. 바로 ‘국가공무원 인건비 20% 삭감’이나 ‘중의원 비례 정수 80명 축소’, ‘자녀수당 1인당 월 2만6000엔(36만원) 지급’ 등 국민의 눈을 사로잡은 매니페스토로 말이다. 오죽했으면 국회 입법조사처는 “자민당 ‘54년 독주’를 무너뜨린 건 매니페스토”라 했겠는가.

세상사가 그렇지만, 기쁨은 잠시이고 고통은 이어진다. 2009년 총선 당시 민주당이 약속한 매니페스토는 3년 만에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고교 무상교육과 고속도 통행료 무상화 등 공짜 시리즈는 사라졌고 최저 연금제 등은 폐기 직전이다. 대신 안 하겠다던 증세만 눈앞에 떡하니 서있다.

민주당 정권에도 ‘실패’의 딱지가 붙었다. 정권의 첫 총리인 하시모토 전 총리는 후텐마기지 이전을 공약했다가 미국과의 갈등으로 좌절돼 8개월 만에 낙마했고, 뒤를 이은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도 약속을 뒤집고 증세를 주장했다가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제 매니페스토의 부메랑은 노다 총리를 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선 후보들의 비전 및 전략과 정책공약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대체로 장밋빛이고 달콤하다. 일부는 비전과 전략이 미흡한 채 세세한 정책공약만 있거나 일부는 비전과 전략에 대한 고민만 있고 정책공약이 아직 미흡한 차이는 있지만.

하지만 단순히 집권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성공한 대통령’을 꿈꾼다면 후보들은 지금 당장 장밋빛 일색의 달콤한 공약 남발을 주문하는 참모들을 깨우쳐야 한다. 집권만을 위한 잘못된 매니페스토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일본 민주당을 보라고. 조선 후기의 ‘명군’ 정조도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생각이 반이다. 하지만 말이 어려운 게 아니고, 실행이 어렵다”(‘일득록’ 중에서)고 하지 않았던가. 다만 좋은 것을 다 담으려는 ‘매니페스토 만능론’도 문제지만, 아직 매니페스토가 선거와 평가의 중심이 되지 못한 한국 상황에서 ‘매니페스토 폐지론’ 또한 과격하다.

김용출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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