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포르노(War Porn)’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전쟁 포르노란 전장에 투입된 전투기나 폭격기가 적을 사살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말한다. 군인들은 이를 ‘정찰기 포르노(Drone Porn)’라고도 부른다. 최근 인터넷에 전쟁 포르노가 넘쳐나면서 인명 살상 현장이 점점 몰인간적이고 잔인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전쟁 포르노 범람은 전쟁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요즘 전쟁 포르노의 ‘노출 강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졌다. 전쟁 포르노에 주인공은 군사시설에서 적군, 즉 사람으로 바뀌었다. 해상도는 등장인물의 사지와 몸 동작을 구분할 정도로 좋아졌다. 주인공이 어디를 보고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미사일이 명중하면 파편이 튀고 살점이 날아간다. 사람은 형체도 없다. 일부 전쟁 포르노는 조종사의 거친 숨소리도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봐, 아직 살았어. 다시 쏴!” “드르륵 쾅!” “잘했어!”
최근 인기를 끄는 전쟁 포르노는 중무장한 테러범 6명이 미사일 세례를 받고 폭사하는 장면이다. 테러범들은 주택가 주변을 서성대다 로켓 한방에 날아간다. 로켓 발사기 파괴 장면도 인기다. 기관총을 맞고 기어서 도망가는 사람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어 숨통을 끊어 놓는다. 차량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무장세력을 미사일 한방에 명중시키는 동영상도 찾는 이가 많다. 지금까지 이들 전쟁 포르노 클릭 수가 1000만번이 넘어서면서 ‘갓워포른(gotwarporn.com)’과 같은 전쟁 포르노 전문 웹사이트도 생겨났다.
◇미군 병사들이 텍사스 포트후드기지에서 무인정찰기 섀도우를 이륙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미군의 대표 UAV인 프레데터는 작전 반경이 약 730㎞에 40시간 동안 목표물 주변 상공을 선회비행할 수 있다. 이보다 큰 UAV 리퍼는 작전 반경이 5900㎞에 달하고 사이드와인더 미사일과 200㎏ 짜리 레이저 조준 폭탄을 탑재할 수 있다. 이들 UAV에 장착된 고성능 카메라는 적진 깊숙이 찍은 생생한 영상을 지상 기지로 전송한다.
미 국방부(펜타곤)는 이렇게 모은 전쟁 포르노를 최근 인터넷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동영상은 미군 영상공보를 담당하는 ‘DVIDS’에 의해 제공된다. 테러조직에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대외적으로는 미군의 UAV의 성능과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서다.
◇2000년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 미국의 무인정찰기가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타르낙 팜 훈련소 상공에서 촬영한 사진 속에 정보 당국이 오사마 빈 라덴으로 추정하는 인물(오른쪽 하얀색)과 경호원들이 찍혀 있다. |
일부 군사 전문가는 UAV가 아예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화약이나 비행기 발명에 버금갈 만큼 획기적이라는 것이다. 상호 무장한 상태에서 치르는 대면 전투가 과거 전쟁 양상이라면 이제는 한편은 노출되고, 다른 한편은 2∼3㎞ 상공에서 ‘보이지 않게’ 전쟁을 치르는 미래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리온 파네타 미 중앙정부국(CIA) 국장은 “UAV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실제 전투기 조종사보다 UAV 조종사를 더 많이 배출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전쟁 포르노가 인터넷에 유출될 것으로 보인다.
◆가학성·진실성 논란=전쟁 포르노를 둘러싼 논란 대부분은 UAV 논란과 중첩된다. UAV의 활약이 커질수록 그만큼 논란도 증폭된다.
◇이라크 무장세력이 탄 차량이 미군 무인공격기의 공격을 받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캡처 |
뉴 아메리카재단(NAF)은 파키스탄에서 벌어진 UAV 작전으로 2006년 이후 750∼1000명이 숨졌고 그 3분의 1은 민간인이라고 추정했다. 더욱이 UAV 공격은 사실상 국가가 지원하는 암살 내지는 표적살해로 간주될 수 있어 국제법 위반 논란도 제기된다. UAV 오폭 사건을 조사중인 유엔의 필립 알스톤 특별조사위원은 “미 정부에 관할권(주권) 밖에서 자의적으로 행한 처형 행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정보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역대 미 정부 가운데 UAV 활용도가 가장 높은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전쟁 포르노가 많아진 것도 이런 비난들을 무마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전쟁 포르노의 신뢰도도 도마에 올랐다. 펜타곤이 공개한 동영상에는 ‘중무장한 범죄자 공격’ ‘세 명의 범법자’ 등 제목이 달려 있다. 하지만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미 인터넷 신문 허핑턴포스트(HP)가 지적했다. 동영상 속 피폭자들은 얼굴 식별이 불가능해 이들이 테러범인지 민간인인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비평가 엘리슨 킬켄니는 “그들은 익명의 공격대상이지만 미군은 그들이 나쁜 사람이고, 유죄이고, 죽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며 “(미군의 사형 집행에) 재판 따위는 필요 없다”고 비난했다.
전쟁 포르노는 전쟁을 몰인간화, 오락화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전쟁 포르노를 만드는 사람(조종사)도 보는 이들(네티즌)도 그 속에 담긴 살상 장면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인다. 유혈이 낭자한 전쟁 영상은 이제 어린이들까지 아무런 제약 없이 볼 수 있는 하나의 인터넷 동영상 콘텐츠가 됐다.
미국의 두뇌집단 브루킹스 연구소의 피터 싱어 연구원은 “UAV 전투 장면은 누구나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다. UAV는 전쟁을 오락의 일종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던 캘리포니아대학 매리 두지악 교수(법학)는 “UAV는 미국민을 군사작전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기술적 진전”이라며 “동시에 끝없는 전쟁에 대한 정치적 견제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