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사색이다. 몸과 마음의 환기이자 발견이며 대화다. 철학이나 문학에 등장하는 많은 발견은 산책에서 나왔다. 독일에선 친구와 산책하는 것이 여전히 일상적인 대화법이다. 특히 책읽기는 일종의 지식을 얻는 산책이다. 산책으로 나는 잃어버린 호흡과 속도를 찾는다. 지금 기계의 속도에 끌려가는 기계문명 속에서의 산책은 이미 거대한 기계 더미에 묻힌 유물로 변해버린 게 아닌지 두렵다. 올해로 사후 200년이 되는 독일의 천재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1800년 뷔르츠부르크 거리를 산책하면서 발견한 생각을 옮겨본다.
“나는 생각했다. 왜 저 둥근 아치는 아무 받침도 없는데 무너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이 서있는 것은 모든 돌들이 동시에 무너지려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대답해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서 형언할 수 없는 상쾌한 위안을 얻었으며, 모든 것이 나를 무너뜨릴지라도, 나 역시 저 아치처럼 나를 지킬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결정적인 순간까지 늘 내 맘에 간직되었다.”
라삐율 재독일 연출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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