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책동네 산책] 산책은 사색이다

입력 : 2011-03-04 20:39:34 수정 : 2011-03-04 20:39: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한국인들의 발걸음에는 산책의 여유로움을 찾기 힘들다. 발걸음은 늘 어떤 목적과 연관되어 있다. 일하러 가거나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쇼핑을 하거나 몸을 단련하기 위한 정도의 걷기와 뛰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걷고 시간이 남으면 휴대전화, 컴퓨터, TV리모컨으로 손이 가게 마련이다. 때론 이 모든 것이 동시에 벌어지기도 한다. 서울의 지하철을 갈아타는 어느 긴 통로에서 거의 2명에 1명꼴로 네모난 기계를 들고 걸어간다. 그들은 걸어가면서 동영상을 보거나 인터넷 서핑도 하는 것 같다. 그런 장면을 나는 한국 이외에 어디에서도 본 적 없다. 이건 매우 사이보그적인 장면이다. 그 인파는 혈관 안의 혈구들처럼 여러 길들을 흘러가면서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기술이 인간 안으로 파고들수록 인간은 더 편해지지도, 더 한가해지지도, 더 똑똑해지지도, 더 인지력이 강해지지도 않고 오히려 그 반대가 되기 십상이다.

산책은 사색이다. 몸과 마음의 환기이자 발견이며 대화다. 철학이나 문학에 등장하는 많은 발견은 산책에서 나왔다. 독일에선 친구와 산책하는 것이 여전히 일상적인 대화법이다. 특히 책읽기는 일종의 지식을 얻는 산책이다. 산책으로 나는 잃어버린 호흡과 속도를 찾는다. 지금 기계의 속도에 끌려가는 기계문명 속에서의 산책은 이미 거대한 기계 더미에 묻힌 유물로 변해버린 게 아닌지 두렵다. 올해로 사후 200년이 되는 독일의 천재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1800년 뷔르츠부르크 거리를 산책하면서 발견한 생각을 옮겨본다.

“나는 생각했다. 왜 저 둥근 아치는 아무 받침도 없는데 무너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이 서있는 것은 모든 돌들이 동시에 무너지려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대답해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서 형언할 수 없는 상쾌한 위안을 얻었으며, 모든 것이 나를 무너뜨릴지라도, 나 역시 저 아치처럼 나를 지킬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결정적인 순간까지 늘 내 맘에 간직되었다.”

라삐율 재독일 연출가·번역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김민주 '청순 매력'
  • 김민주 '청순 매력'
  • 노윤서 '상큼한 미소'
  • 빌리 츠키 '과즙미 폭발'
  • 임지연 '시크한 가을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