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흙이 왜 유난히 붉은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간 것은 아니다. 그 땅에 뿌려진 숱한 죽음을 모르고 갔다. 책은 책이니까…. 책으로만 경험했으니 피상적인 지식이라고나 할까. 시에라리온에 도착하고 나서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터뷰를 했다. 이중 통역으로 인해 분명한 의사전달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의 분노가 무엇인지,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인지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 입을 열 때마다 자갈을 한 뭉치씩 내게 던지는 것 같았다. 살인 트럭이 질주하고 광란의 총성과 비명이 울려 퍼졌던 비극의 10년. 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손목을 마구잡이로 잘랐다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전쟁 박물관처럼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유 없이 잘려져 뭉툭한 손목을 내미는 아이들에게, 너희에 대해 책에서 읽었지만 믿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전쟁의 당연한 결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이국의 검고 가난한 현실이 보였다. 어떤 책이 지어낸 쇼킹 아프리칸도 아닌, 사람이 보였다. 너무도 슬프고 어두운 현실이 지구촌에 실재한다는 나만의 ‘새로운 사실’을 얻었다. 책동네 산책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이 글을 올린다.
이수연 KBS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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