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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네 산책] 술 한잔 곁들이며…

입력 : 2011-09-24 02:48:47 수정 : 2011-09-24 02:4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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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선비들이나 산사의 스님들은 곡차를 음용수처럼 애용했다. 곡차란 술처럼 만든 음료수란 말인데 말그대로 누룩과 곡식으로 빚은 전통주를 운치있게 ‘곡차’라고 칭한 것이다. 곡차와 시문은 인문학을 꽃피웠던 조선시대에 빠질 수 없는 조합이었다. 간혹 술 때문에 몸을 망가뜨려 하나뿐인 생명의 단축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이들도 없진 않았으나, 술과 선비는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밀접했다. 다산 정약용은 전남 강진에서 오랜 유배생활로 지쳐가는 심신을 전통 차와 약술로 다스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신경식 (주)생동동호프 대표
심신이 허약한 선비들이 곡차로 몸을 다스렸다는 기록은 많다. 대단한 필력을 자랑했던 유명 선인들 역시 약주를 애용하면서 지금도 전해지는 시와 그림, 글을 남겼던 전례는 얼마든지 있다. 필자 역시 고향 시골집에서 담근 전통주 맛을 잊을 수 없다. 매해 설날 보름 전에 큰 술독에 담근 약술은 모내기철인 음력 5월쯤이면 개봉해 마을에 돌린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전통 가옥의 부엌 온도가 술 맛 내는 데 더없이 좋은 조건을 제공한 것이다. 모내기철 초등학생인 나는 모친이 한 됫병에 담아 주신 쌀막걸리를 들녘에 배달하곤 했다. 심부름 도중 아무도 몰래 한 모금씩 맛보곤했는데, 그 달콤새콤한 감칠맛은 어린 시절 잊지 못할 추억거리다.

현재 시판되는 쌀막거리나 기타 전통주는 마시고 난 후 두통이 심한 단점이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해 전통주를 기피하고 두통이 조금 덜한 소주나 맥주로 애주가들의 기호가 변하게 되었다. 생과일과 쌀을 섞어 만든 ‘라이스 와인’ 같은 것은 전통 약주에 해당한다. 전통주에 첨가물을 섞지 않으면 두통이 덜할뿐더러 몸에도 더없이 좋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 오면서 전통주 한 잔 곁들이면서 선조들의 시 한 수 읊조리는 맛도 일품일 것이다. 그렇다고 술 마시자고 광고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선조들과 같은 기품과 의연함을 잃지 않으면서 전통문화를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이런저런 서설을 하는 것이다. 술 만드는 장인이기에 책과 두통 없는 약주를 놓고 담론을 즐기는, 운치 있고 건강한 음주문화를 기대해본다.

신경식 (주)생동동호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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