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지역 주민들은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도로의 광역화에 목숨을 건다. 그게 내 집 앞으로 시원하게 놓이길 학수고대한다. 복권 번호를 맞히는 심정으로 아파트 입구의 공지를 챙겨보고 환호하며, 때론 비탄에 젖는다. 주민들끼리 뭉쳐 머리띠를 매고 항의 시위도 한다. 그런데 이 ‘낙장불입’의 시인은 꿈쩍하지 않는다. 그는 도시락을 싸들고 지천의 공사에 반대한다. 그의 반대는 집요하면서도 장기전이다. 필자는 그의 생각이 전부 옳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다 틀린 것이 아님도 안다. 개발은 언제나 양면의 날과 같다. 상충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이익의 분배에서 서로 다른 집단끼리 대립적이며 이해가 맞물린다.
이런 복잡한 속내를 알면서도 그의 반대에 수긍하는 것은 그가 시골에 살고, 자신의 터전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 한복판의 도시 개발에 대해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탁상공론 식으로 지도에 줄을 긋고 꾀를 낸다고 해도 자신이 사랑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만큼 현실을 알 수는 없다. 근래 이원규 시인은 쓴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는 책은 길이란 길을 다 누비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 속에서 간혹 개발을 주도하는 정부를 비난하는 대목도 나온다. 책을 만들기 전에 나는 그중 몇 부분을 완곡하게 고치자고 제안했으나, 바로 거절당했다. 나는 깨닫는다. 내 마음은 아직까지 ‘공사 중’임을….
김영훈 오픈하우스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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