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에 의하면, 서해에 이무기 ‘검룡’이 살고 있었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여의주도 없고 이렇다 할 공덕도 없는 검룡은 “옳지, 물길을 타고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올라가 승천해야지!” 하면서 한강을 거슬러 오르기로 결심한다. 인천광역시 강화도 앞바다를 출발한 검룡은 경기도 김포반도 끝자락인 월곶면 보구곶리 앞 무인도 유도를 출발점으로 헤엄을 치며 북한이 빤히 건너다보이는 한강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거대한 바다 같은 강을 신나게 헤엄치며 용이 다된 듯 꿈에 부풀었던 검룡은 임진강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우측으로 몸을 틀어 통일전망대와 파주출판도시, 일산 신도시, 행주산성을 구경하며 서울로 들어선다.
서울 입구엔 한때 쓰레기를 매립하다가 지금은 그럴듯한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 월드컵공원과 하늘공원이 반긴다. 바로 옆에는 2002년 공 하나로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방패연을 날리며 위용을 뽐내고 있다. 월드컵도로와 강변도로라는 강 양쪽 길 위의 무수한 차들을 사열하며 검룡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지 여의도를 지나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수도 서울을 관통해 유유히 헤엄친다. 마포대교 원효대교 한남대교 영동대교 올림픽대교 천호대교 밑을 차례로 지난 검룡은 워커힐호텔과 암사동 선사주거지를 끼고 조정경기장이 있는 미사리에 다다른다.
섶다리를 가로지른 검룡은 송천, 임계천을 힐긋 쳐다보며 골지천으로 내달린다. 골지천 인근엔 빗방울이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 북쪽으로 흐르면 한강, 동쪽으로 흐르면 오십천이 된다는 삼수령(三水嶺)이 나온다. 이곳에서 15㎞만 더 가면 검룡소다. 태백시 창죽동 산 1-1번지 금대봉 계곡. 골지천이 시작되는 샘이자 한강의 발원지다. 금대봉 기슭에 있는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에서 솟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이곳에서 다시 솟아난다. 법정하구인 유도 산정으로부터 장장 497.5㎞ 거리다. 검룡이 승천하려고 용틀임을 하다 아직도 갇혀 있다는 소이다. 새벽녘 물안개가 자욱이 낀 날 목을 축이던 소가 이곳에서 신룡(神龍)이 된 검룡한테 잡혀먹히자 마을 사람들이 메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래 덩굴로 뒤덮였던 소를 1986년 주민들이 발견해 다시 준설했고, 이듬해 국립지리원에 의해 한강의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되었다.
하루 2000t 이상의 냉천수를 공급하는 한강의 최장 발원지 검룡소. 인근 대덕산과 금대봉은 자연생태보전지역이다. |
검룡소에서 비롯된 한강은 강원도는 물론 경기도와 서울시 등지에 음용수와 공업용수 등을 공급하며 한강문화를 꽃피우는 데 영양분 역할을 했다. 검룡소는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태백시 황지동 25-4),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태백산 천제단과 함께 민족의 영지(靈地)로 한반도에 둥지를 튼 우리 민족의 생명수이자 겨레의 수맥이다.
황지는 태백시를 둘러싼 태백산·함백산·백병산·매봉산 등의 줄기를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물이 용출되는 곳이다. 예로부터 ‘천황(天潢)’으로 불리며 신비하고 영험한 기운이 서린 못으로 인정받았다. 해발 700m에 자리한 황지는 둘레가 100m인 상지, 50m인 중지, 30m인 하지로 된 3개의 못으로 이뤄져 있으며, 사계절 하루 5000t의 물이 솟아나며 언제나 15도를 유지하는 청정수다.
시작은 미약하나 한강과 낙동강으로 끝이 창대해진 두 발원지를 통해 우리는 태백의 정기를 느낄 수 있다. 마르지 않는 영겁의 기로 이 땅을 적셔주는 ‘생명의 시원(始原)’ 두 샘이 있기에 우리는 풍요롭고 올해도 용꿈을 꾼다.
태백=글·사진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일러스트 최해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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