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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의 기운 받아 새 희망 솟아라

입력 : 2012-01-20 02:13:52 수정 : 2012-01-20 02: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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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수맥’ 한강 발원지 태백 검룡소를 가다
올해는 임진년(壬辰年)이다. ‘壬’(임)은 흑색을, ‘辰’(진)은 용(龍)을 의미하기에 흑룡의 해로 불린다. 음력 설(23일)을 맞아 비로소 용의 해가 시작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을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다. 국권을 상징하는 국새에도 용을 손잡이로 사용했고, 임금의 옷이나 의자에도 용 그림이 들어갔다. 설화나 전설, 민담에도 여러 형태의 용이 등장해 백성과 애환을 함께했다. 태몽에 용이 나오면 뱃속의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을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전국 방방곡곡엔 용과 관련된 지명이 1261곳이나 된다.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으뜸이다. 설을 맞아 전국에서 용의 기운이 가장 센 곳으로 알려진 강원도 태백시의 검룡소(儉龍沼)를 다녀왔다. 한강의 발원지인 그곳은 지금도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에 이무기 ‘검룡’이 살고 있었다.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여의주도 없고 이렇다 할 공덕도 없는 검룡은 “옳지, 물길을 타고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올라가 승천해야지!” 하면서 한강을 거슬러 오르기로 결심한다. 인천광역시 강화도 앞바다를 출발한 검룡은 경기도 김포반도 끝자락인 월곶면 보구곶리 앞 무인도 유도를 출발점으로 헤엄을 치며 북한이 빤히 건너다보이는 한강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거대한 바다 같은 강을 신나게 헤엄치며 용이 다된 듯 꿈에 부풀었던 검룡은 임진강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우측으로 몸을 틀어 통일전망대와 파주출판도시, 일산 신도시, 행주산성을 구경하며 서울로 들어선다.

서울 입구엔 한때 쓰레기를 매립하다가 지금은 그럴듯한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 월드컵공원과 하늘공원이 반긴다. 바로 옆에는 2002년 공 하나로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방패연을 날리며 위용을 뽐내고 있다. 월드컵도로와 강변도로라는 강 양쪽 길 위의 무수한 차들을 사열하며 검룡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지 여의도를 지나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수도 서울을 관통해 유유히 헤엄친다. 마포대교 원효대교 한남대교 영동대교 올림픽대교 천호대교 밑을 차례로 지난 검룡은 워커힐호텔과 암사동 선사주거지를 끼고 조정경기장이 있는 미사리에 다다른다.

팔당호로 껑충 뛰어들어 신나게 놀던 검룡은 북한강과 조우하는 양수대교 아래 두물머리에서 다시 고민에 빠진다. 오른쪽으로 가야 하나, 왼쪽으로 가야 하나. 직감을 믿은 검룡은 이내 강폭이 넓고 흐름이 원만한 남한강으로 접어든다. 산세 좋고 카페가 즐비한 양평을 지난 검룡은 여주에 이르러 여강으로 이름을 바꾼 한강 지류로 접어든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충주호에서 여독을 푼 검룡은 영월읍 하송리에서 서강을 만나고, 다시 동강과 조우해 조양강까지 치고 올라간다. 어느새 정선아리랑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아우라지가 눈앞이다. 동강으로 이름이 바뀐 강변에는 동강할미꽃과 꼬리겨우살이가 반기고, 강 속엔 어름치와 연준모치, 수달, 원앙이 노닌다.

섶다리를 가로지른 검룡은 송천, 임계천을 힐긋 쳐다보며 골지천으로 내달린다. 골지천 인근엔 빗방울이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 북쪽으로 흐르면 한강, 동쪽으로 흐르면 오십천이 된다는 삼수령(三水嶺)이 나온다. 이곳에서 15㎞만 더 가면 검룡소다. 태백시 창죽동 산 1-1번지 금대봉 계곡. 골지천이 시작되는 샘이자 한강의 발원지다. 금대봉 기슭에 있는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에서 솟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이곳에서 다시 솟아난다. 법정하구인 유도 산정으로부터 장장 497.5㎞ 거리다. 검룡이 승천하려고 용틀임을 하다 아직도 갇혀 있다는 소이다. 새벽녘 물안개가 자욱이 낀 날 목을 축이던 소가 이곳에서 신룡(神龍)이 된 검룡한테 잡혀먹히자 마을 사람들이 메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래 덩굴로 뒤덮였던 소를 1986년 주민들이 발견해 다시 준설했고, 이듬해 국립지리원에 의해 한강의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되었다.

하루 2000t 이상의 냉천수를 공급하는 한강의 최장 발원지 검룡소. 인근 대덕산과 금대봉은 자연생태보전지역이다.
지금도 용이 몸부림치며 올라가던 계곡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검룡소는 1억5000만년 전 백악기에 형성된 석회암동굴 소로서 하루 2000t 이상의 지하수가 용출된다. 1분에 2ℓ짜리 생수 약 700통 분량을 토해내는 셈이다. 수온은 사계절 내내 9도를 유지해 여름엔 냉기를, 겨울엔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갈수기에도 샘이 마르는 일이 없어 우리 겨레의 정신과 육신을 보듬는 민족의 젖줄이자 생명의 근원지로 평가받고 있다. 소 바로 아래 이끼폭포 바위엔 사계절 내내 피어 있는 물이끼와 희귀 동식물이 지천이다. 환경부는 이곳을 1993년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했고, 문화재청은 2010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했다.

검룡소에서 비롯된 한강은 강원도는 물론 경기도와 서울시 등지에 음용수와 공업용수 등을 공급하며 한강문화를 꽃피우는 데 영양분 역할을 했다. 검룡소는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태백시 황지동 25-4),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태백산 천제단과 함께 민족의 영지(靈地)로 한반도에 둥지를 튼 우리 민족의 생명수이자 겨레의 수맥이다.

황지는 태백시를 둘러싼 태백산·함백산·백병산·매봉산 등의 줄기를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물이 용출되는 곳이다. 예로부터 ‘천황(天潢)’으로 불리며 신비하고 영험한 기운이 서린 못으로 인정받았다. 해발 700m에 자리한 황지는 둘레가 100m인 상지, 50m인 중지, 30m인 하지로 된 3개의 못으로 이뤄져 있으며, 사계절 하루 5000t의 물이 솟아나며 언제나 15도를 유지하는 청정수다.

시작은 미약하나 한강과 낙동강으로 끝이 창대해진 두 발원지를 통해 우리는 태백의 정기를 느낄 수 있다. 마르지 않는 영겁의 기로 이 땅을 적셔주는 ‘생명의 시원(始原)’ 두 샘이 있기에 우리는 풍요롭고 올해도 용꿈을 꾼다.

태백=글·사진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일러스트 최해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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