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에 적자 비용 떠넘겨…미디어 생태계 악영향 우려 종합편성채널(종편)이 야심차게 준비한 대작 드라마가 되레 종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작 드라마는 ‘0%’대 시청률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에서 시작됐지만 오히려 종편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 당초 참신한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표방했던 것과는 달리 거액 투자, 스타 영입 등 지상파 흉내내기가 종편 위기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19일 방송업계에 따르면 TV조선은 총 100여억원을 투자한 대작 드라마 ‘한반도’(24부작)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치자 이를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투자비 회수 마지노선인 시청률 2%를 못 넘으면서 내부에서 “조기 종영하라”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반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드라마국을 총괄하는 전무가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TV조선) 빠담빠담(JTBC) |
불후의 명작(채널A) 사랑도 돈이 되나요(MBN) |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TV아사히는 JTBC에 출자금을 댄 주주 중 하나”라며 “주주가 자기 회사 제품을 사준 것에 대해 ‘종편 최초’와 ‘역대 최고액’이라는 수식어로 자화자찬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방송 전문가들은 종편으로 인해 미디어 생태계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사 2월 보고서에 따르면 종편의 광고 규모가 3개월 만에 지상파 대비 70%에서 25%로 내려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종편들이 외주제작사에 제작비용 후려치기, 구두계약 파기 등 지상파보다 더한 ‘슈퍼 갑’의 횡포를 부린다는 게 방송업계의 시각이다. MBN을 제외한 종편 3사가 2010년 11월 제작사들과 불공정 거래를 타파하고 동반 성장하겠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0%대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외주사에 피해를 떠넘기는 실정이다.
지난 13일 종편의 만행을 고발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독립제작사협회 배대식 팀장은 “종편은 나쁜 관행을 혁파하기는커녕 지상파보다 더 악랄하게 ‘갑’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며 “지상파는 최소한 6개월의 편성기간을 보장하지만 종편은 지난 3개월 동안 25개의 프로그램을 한 달 만에 폐지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종편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케이블PP(프로그램 공급자)로서의 지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종편은 케이블PP에 불과함에도 거대 신문사를 등에 업고 지상파처럼 행동하려 한다”며 “지상파 기획 흉내를 내려다 보니 차별화된 콘텐츠는커녕 거액을 쏟아붓고도 위기 상황에 빠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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