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칸남자’ 비난 일자 ‘착한남자’로
“올바른 표현 극적 효과 저해” 지적도 ‘한글 파괴인가, 예술적 표현인가.’
KBS 수목드라마 ‘차칸남자’가 방영 2회 만에 ‘착한남자’로 제목을 변경하면서 방송 언어에 대한 맞춤법 논란이 일고 있다. 작가의 창작 의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올바른 언어를 선도해야 한다는 공영방송 의무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일단 ‘차칸남자’는 ‘착한남자’로 정정됐지만, 불필요한 외국어·은어·비속어 등 방송 콘텐츠 전반에 가득한 잘못된 언어에 대한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방송계에서는 현실 반영이라 주장하는 반면 한글단체에서는 “사용 수준이 과도하다”며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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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 그대로 제목을 붙였던 드라마 ‘차칸남자’와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말아톤’(왼쪽부터). 창작 의지로 평가받았던 영화와 달리 ‘차칸남자’는 ‘착한남자’로 제목을 변경했다. |
국립국어원이 매달 발표하는 방송언어 모니터링 자료에 따르면 비속어·은어·불필요한 외국어 등이 방송 콘텐츠에 비일비재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어원이 ‘넝쿨째 굴러온 당신’(KBS), ‘메이퀸’(MBC), ‘다섯손가락’(SBS), ‘신사의 품격’(SBS) 등 주말드라마 8편을 대상으로 8월 한 달 동안 조사한 결과 117건이 ‘저품격 언어’로 지적됐다. 그중 비속어가 61.5%, 불필요한 외국어가 23.1%, 인격 모독 표현이 6%, 은어 및 통신어가 5.1%를 차지했다.
“누나들이 다 ‘꼰질렀을’ 거 아냐?”(비속어·넝쿨째 굴러온 당신 53회), “너 ‘겁대가리’ ‘똥둑간’에 두고 왔니?”(비속어·메이퀸 2회), “집에서 일하는 ‘헬퍼’가 5명이나 된다며’(불필요한 외국어·다섯손가락 1회), “나도 완전 ‘깜놀’했어”(은어·신사의 품격 20회) 등이 그 사례다.
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 관계자는 “방송 프로그램의 잘못된 언어와 저속한 표현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해 지난해부터 각 방송사에 모니터링 결과와 함께 개선 촉구 공문을 보내고 있다”며 “개인의 창작물에 해당하는 영화·소설·만화 등과 달리 방송에는 공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발음 그대로 쓰며 논란이 된 ‘차칸남자’와 달리 ‘말아톤’(2005), ‘바람 피기 좋은 날’(2007·‘피우기’가 올바른 표현), ‘날나리 종부전’(2008· ‘날라리’), ‘님은 먼곳에’(2008·‘임’은 먼곳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등의 영화 제목은 창작자의 의도대로 간판을 내걸며 예술적인 의지로 평가받았다.
◆현실 반영한 콘텐츠, 타협점 필요
시청률 20%를 넘나들며 인기를 얻었던 ‘신사의 품격’(SBS)은 국어원이 7월 한 달간 주말드라마 7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저품격 언어’ 143건 중 58.7%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올’ 블랙에 ‘시크함’이 좋아” “‘디테일한’ 질문은 ‘에이전시’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해주세요” 등 불필요한 외국어 남발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외국어를 통해 자기 멋에 취해 사는 전문직 미혼 남성의 지적 허영을 나타낼 수 있고 실제 현실에도 그런 캐릭터가 많다는 점에서 올바른 표현은 되레 극의 생생함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왕따’(따돌림) ‘신상’(새로 나온 물건) ‘멘붕’(정신 분열) ‘쌤’(선생님) ‘밀당’(밀고 당기기) 등도 올바른 표현이 아니지만 특정 상황에서 적확하게 떨어지는 의미를 전달하기에 자주 사용된다.
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 관계자는 “어쩔 수 없어 보이는 표현도 있지만 ‘열라’(정말) ‘브레이크 타임’(휴식 시간)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 ‘빠가났어요’(고장 났어요) ‘기분 업 됐으면’(기분 좋아졌으면) 등 굳이 안 써도 되는 표현을 방송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중문화평론가들은 이에 대해 “‘차칸남자’를 두고 한글단체에서 격렬하게 항의한 건 영화·음반 등 취향과 연령에 따라 선택 구매하는 상업 콘텐츠와 달리 지상파 방송은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되는 대중매체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방송 콘텐츠에서 정색하고 우리말만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작자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지양해나가는 절충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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