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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전통마을 풍경 어릴 적 외가마을 온 듯
차밭 유려한 곡선·연둣빛 물결에 마음 살랑∼
전남 보성에서는 이즈음 마음을 산뜻하고 개운하게 만들어 주는 풍경을 여럿 만나게 된다. 바람에 ‘쏴아’ 소리를 내는 대나무숲과 흙돌담으로 둘러싸인 고졸한 전통마을이 있고,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광활한 차밭이 펼쳐져 있다. 여기에 봄내음이 묻어나는 갈대숲, 말만 들어도 피로가 달아날 것 같은 해수녹차탕도 곁들여진다.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에 자리한 강골마을. 전통의 멋과 소박한 정서가 살아 있는 아담한 마을이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방조제가 놓이기 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다가 넘실거려 ‘강골(江谷)’이란 이름이 붙었고, 강동(江洞)이라고도 불린다.

전남 보성 강골마을의 열화정은 조선 헌종 때 세워진 정자로, 주변의 대나무숲·동백나무와 어우러져 빼어난 멋과 정취를 자랑한다.
16세기 이후 광산이씨 집성촌이 된 이 마을에는 현재 30여채의 가옥이 있고, 26가구가 살고 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3채의 한옥과 1채의 정자가 있지만, 그 외에는 수백년에 걸친 여러 시대의 집들이 섞여 있다. 초가집도 몇 채 있고, 광복 이후 지어진 시멘트 기와 얹은 집들도 있다. 1970년대 슬레이트로 지붕을 새로 얹은 집들도 눈에 띈다. 1900년을 전후해 세워진 3채의 양반가 한옥도 다른 지역의 위세당당한 세도가 종택에 비하면 소박하기 그지없다. 잘 꾸며 놓은 인공정원도 없는 이 한옥들은 그 당시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집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중장년층이라면 대부분 아스라한 추억 한 토막씩 갖고 있는 어릴 적 외가 마을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 외지고 작은 마을을 찾는 도시인들이 많은 건 아마도 이런 데서 오는 안온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초록 이끼를 뒤집어쓴 돌담길이 더없이 정겹다. 솟을대문이 기품 있는 이용욱 가옥(1904년 건립)과 초가로 지붕을 얹은 이식래 가옥(1891년 건립) 등을 둘러본 후 발길이 닿은 곳은 열화정. 강골마을에서 풍경만으로 치면 가장 눈에 띄는 곳으로, 마을 뒤편 대나무 숲 사이의 S자 돌담길을 따라 돌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운치 있는 정자다. 조선 헌종 때 세워진 열화정 주변은 대나무와 동백나무가 에워싸고 있고, 바로 앞에는 ㄱ자 연못이 꾸며져 있다. 동백꽃이 이미 절정이 지나 아쉽기는 하지만, 이 누각의 난간에 기대어 앉아 대숲을 지나는 바람소리를 듣노라면 온몸이 흥취로 가득 차게 된다.

전남 보성의 차밭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차나무와 주변의 삼나무·봄꽃들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물론 보성의 으뜸 명소는 차밭이다. 우리나라 최대 차 산지인 보성에는 여러 차밭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대한다원. 강골마을에서 멀지 않은 활성산(465m) 99만㎡(30만평)의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하늘을 가리는 장대한 삼나무 숲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양 옆으로 광활한 차밭이 펼쳐진다. 차밭은 5월 초순 연초록 새잎이 돋을 때 가장 아름답지만, 사철 푸른 차밭에는 이즈음도 싱그러움이 넘친다. 차나무들이 반복적으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그 주위에 수만 그루의 삼나무가 늘어선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여기에 차밭 곳곳에 만개한 벚꽃과 목련까지 어우러져 상춘객의 감흥을 한층 더 돋우고 있다.

차밭 너머 율포해변도 들러야 할 명소다. 백사장 길이가 1㎞ 정도로 규모가 작긴 하지만 갯벌이 넓으며, 일출에서 일몰까지 모두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보성군이 운영하는 율포해수녹차탕은 평일에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기다.

보성에는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가 많다. 득량만 주변에는 4㎞ 남짓의 방조제가 쌓아져 있고, 그 안쪽으로 갈대밭이 뻗어 있다. ‘득량’이란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군수식량을 모아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여 얻은 이름. 이곳의 갈대는 순천만 것만큼 키는 크지 않지만,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호젓하게 걷거나 드라이브하기에 그만이다.

득량면 비봉리 바닷가에는 1억년 전 공룡알 화석지가 발견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인근에 비봉공룡공원도 완공돼 개장을 앞두고 있다. 철쭉꽃 군락지로 명성이 자자한 일림산도 보성 봄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겠다.

보성=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여행정보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호남고속도로 동광주나들목으로 나와 29번 국도를 타면 된다. 보성에는 녹차떡국·녹차김치·녹차냉면 등 녹차를 이용한 갖가지 음식이 개발돼 있다. 보성읍 ‘중앙식당’(852-2692)은 녹돈주물럭으로 유명하다. 벌교읍 ‘홍도회관’(857-6259)의 꼬막정식도 별미다. 강골마을(853-1333)은 엿 만들기나 다도 체험을 할 수 있는 민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보성다향제는 다음달 14일부터 19일까지 열리고, 이에 앞서 다음달 4일부터 6일까지 일림산 철쭉문화행사가 열린다. 대한다원 852-4540, 보성군청 문화관광과 850-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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